『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자고나면 시장판도와 기술흐름이 바뀔 정도로 급변하는 세계 소프트웨어산업계를 이처럼 적나라하게 대변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지난 30일 마이크로소프트(MS)와 로터스는 오는 9월경 출하되는 로터스의 그룹웨어, 인트라넷솔류션 「도미노/노츠」와 통합패키지 「스마트스위트」에 넷스케이프의 「내비게이터」대신 MS의 「인터넷익스플로러(IE)4.0」 만을 통합(번들)키로 했다는 공동 발표문을 내놨다(본보 31일자 9면 참조). 양사는 또 MS가 업계표준으로 밀어부치고 있는 컴포넌트 객체기술 COM(Component Object Model)을 로터스의 주요 제품에 채택, 응용소프트웨어 수준의 교차플랫폼(크로스) 환경을 지원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룹웨어분야 세계 최강인 로터스가 이번에 MS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MS와 넷스케이프간 브라우저 경쟁은 새로운 국면을 맡게됐다. 그룹웨어와 인터넷이 접합되면서 「도미노」와 「노츠」에 번들되던 「내비게이터」는 로터스의 제품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MS손들어주기는 로터스로서도 큰 모험이 아닐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 우선 점유율면에서 크게 앞선 「내비게이터」버전 고객들을 어떻게 설득해서 「IE4.0」버전으로 이전토록할 것인 가라는 과제 등에 봉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MS와 로터스의 제휴에 대해 소프트웨어의 특성상 흔히 있을 수 있는 「사건」으로 치부하면서도 양사간 오랜기간 동안 지속돼온 앙숙관계를 고려해볼 때는 전혀 뜻밖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직 도스환경이 전성기였던 90년대 초반만 해도 로터스는 MS 다음인 세계 제2위의 소프트웨어업체였다. 앙숙이 된 계기는 지난 92년 MS가 로터스의 기둥제품이자 스프레드시트시장의 90%를 점유하던 「로터스 1.2.3」 죽이기에 나서면서 부터. 이 때 MS는 도스용 「로터스 1.2.3」 사용자들에 대해 윈도용 「MS엑셀」로 무상 교환해주는 이른바 무차별 업그레이드전략을 구사, 로터스에 치명타를 입혔다. 이 치명타에 로터스는 침몰했고 94년 최고 경영진이 퇴진하며 IBM에 합병되고 말았다. 제품 방향도 「노츠」를 기반으로 한 그룹웨어와 인트라넷으로 선회했다.
로터스는 이번 발표에 앞서 MS의 경쟁사인 넷스케이프사를 비롯, 유닉스 진영과 모든 면에서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오는 등 MS를 「적」으로 간주해오고 있었다. 실제 로터스는 「도미노」와 「노츠」에 「네비게이터」와 「IE」 모두를 번들해왔지만 네비게이터 지원에 훨씬 많은 비중을 두어왔다. 또 객체기술 분야에서도 COM이나 액티브X를 제외한 채 유닉스진영이 주축이 돼 완성한 코바 지원에 편향돼 있었다.
그러나 로터스는 이번에 IE4.0만을 선택함으로써 넷스케이프와 관계를 완전히 청산했고 처음으로 COM 지원을 구체화했다. 특히 COM의 지원은 「도미노」환경에서 「MS엑셀」시트를 불러오거나 「노츠」에서 「MS워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밖에 양사는 MS의 「액티브데스크톱」을 「노츠」 등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했고 「CDF」 등 채널서비스 기술과 「윈도NT5.0」를 비롯 자바언어에 대응하는 HTML4.0 분야에서도 통합과 지원에 합의하기도 했다.
양사의 이번 제휴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영원한 적은 있을 수 없다』는 관행을 다시한번 증명한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즉 MS는 그룹웨어 강자로서 로터스의 지원이 필요했고 로터스도 구연에 집착해서 굳이 MS가 주도하는 표준 우산에서 벗어날 필요가 없다는 상호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한편 로터스가 넷스케이프와의 관계를 청산한 것은 넷스케이프 측의 무리한 요구가 화근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넷스케이프는 브라우저를 비롯 전자우편과 그룹웨어 등이 통합된 「커뮤니케이터」 전체에 대한 번들을 요구한 반면 로터스는 전자우편,그룹웨어,스케줄링을 제외한 브라우저(내비게이터4.0)만 받겠다는 의사를 고집했다.
전자우편과 그룹웨어 전문 로터스로서는 이같은 요구를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 「도미노」 등에 채택키로 한 「IE4.0」에서도 전자우편 「아웃룩 익스프레스」를 제외키로 한 것은 이같은 로터스의 입장을 잘 대변하고 있다.
<서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