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도자의 전력 검증 작업으로 나라가 시끄러울 정도이다. 하지만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에게는 이런 검증 시비는 무의미하다. 그들이야말로 「전쟁터」 같은 「시장」에서 자신의 능력과 조직의 활성화를 무기로 경쟁에서 이겨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다.
정용문 한솔PCS 사장은 국내 최대 종합전자업체인 삼성전자에서 잔뼈가 굵어 대표적인 전문 경영인으로 성장한 인물이다. 특히 정보통신분야에서는 경영과 기술 부문을 한꺼번에 꿰뚫고 있는 간판 스타중 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 95년 신생 기업 한솔로 자리를 옮겨 국내 재계 사상 최대의 격전을 벌였던 PCS 사업자 선정권을 따내는 작업을 진두지휘했고 이제는 「PCS 열풍」을 앞장서 벌이고 있다.
정 사장이 바라보는 PCS 서비스의 시작 의미가 궁금했다. 그는 먼저 『국내에서 PCS 사업이 펼쳐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정 사장은 『그동안 이동통신은 극히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물론 신세기통신이 진입한 이후 복수 사업자 체제로 변화했지만 단말기의 가격이나 요금 등 사용 환경 자체가 여전히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PCS의 등장은 이런 구조 자체를 바꾸는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지적하고 『이제야 비로소 이동통신이 국민 일반에 손쉽게 다가가는 이동통신의 보편화 단계에 진입했고 이에 따라 그간 과점 현상을 유지해온 서비스업체간 시장 질서도 진정한 경쟁체제로 전환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정 사장은 『한솔PCS 역시 이같은 큰 틀의 변화에 발맞춰 「국민 보편 통신」을 지향하고 있고 경쟁체제에서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새로운 대고객 정책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 속에는 보다 저렴한 단말기와 이용 요금, 다양한 부가서비스와 뛰어난 통화 품질 등을 앞세운 PCS의 경쟁력에 관한 강한 자신감이 숨어 있고 한편으로는 무한경쟁 시장을 바라보는 이동통신 업체의 전망을 함축하기도 한다.
정 사장은 『기업간의 경쟁이 늘 그러하듯 최근의 서비스업체간 경쟁 역시 일단 소비자들에게는 반가운 일일 것이다.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되면 그만큼 소비자들의 선택폭이 넒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지나친 과당경쟁은 결국 서비스업체의 공멸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엄청난 초기 투자비 외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최신 기술을 적절히 확보, 지속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위한 기업의 부담은 의외로 크다』며 『서비스업체가 큰 돈은 벌지 못해도 기술개발 등에 재투자할 만한 여력을 갖출 수 있는 수준의 경영 여건을 구축하는 것은 기업은 물론 사용자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사장은 『향후 3, 4년내에 국내 이동통신 사용자 수가 1천7백만 내지 2천만명 수준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PCS 사업자의 경우 약 2백30만∼2백50만명 정도를 확보하면 경영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같은 전망은 단순히 수치에 의한 산술적 분석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시장 균점에 의한 공존 가능성도 있지만 어차피 경쟁체제 속에서는 점유율의 과다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때에는 현재의 5개 이동통신 사업자 중에서도 M&A 대상으로 거론되는 회사가 나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역시 경쟁은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수반된다는 시장 논리가 이동통신 분야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때문인지 정 사장은 유독 대고객 서비스를 강조한다. 그가 한솔PCS 직원들에게 당부하는 사항중 「고객의 불만사항이나 클레임을 두려워 말라」는 것이 있다. 정 사장은 『고객의 클레임이 접수되면 그것을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불만사항을 즉각 해결해 주고 심지어 경영정책에까지 단기간에 반영한다면 고객은 만족할 수밖에 없고 결국 그는 평생고객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솔은 대고객 지원센터를 최대한 확충하고 경영정책과도 연계가 가능한 첨단 컴퓨터 네트워크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정 사장은 이동통신의 보편화가 진일보한 것은 분명하지만 산업 환경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시했다. 『과거의 정보통신은 한 부문만의 독특한 기술로도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었지만 컴퓨터 네트워크 소재 부품 등이 결합되는 메가전자시대로 변화하는 앞으로는 이런 인접부문이 모두 함께 성장해야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국내 현실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PCS만 해도 단말기의 핵심칩은 퀄컴으로부터 공급 받고 기술 사용료까지 지불하며 핵심소재부품은 일본에 의존한다. 자칫 외국업체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함께 『정부의 정책도 이미 완전 경쟁체제에 돌입한 이동통신 서비스시장의 특성을 인정, 공정한 게임의 룰을 형성하는 감독자나 독려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일반 사회 역시 기업의 외형을 모든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풍토를 바꾸어야 한다. 이제는 실속을 차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용문 사장은 지난달 12일 청평에서 40미터 높이의 번지점프를 성공, 국내 최고령 기록을 세웠다. 그만큼 건강엔 자신이 있다. 비법은 없지만 유전적인 요인이 큰 것 같다고 했다. 그에겐 올해 94세, 92세 되신 노부모님이 계시다. 정 사장의 취미는 두뇌의 노화방지를 겨냥한 지적 활동이다. 독서가 도움이 된다고 한다. 걷기도 좋아한다.
<이 택 기자>
정용문 사장 약력
.1934년 출생
.1959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79년 삼성전자 수원공장 부사장
.1988년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대표이사 사장
.1995년 한솔기술원 원장
.1996년 한솔정보통신사업단 공동 단장
.1996∼현재 한솔PCS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