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계속되는 불황은 그동안 시장확대에 편승해 탄탄대로를 달려왔던 PC업계에는 심각한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만들면 팔리던 1∼2년 전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빚어지면서 불황에 대한 별도의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한 국내 업계가 받는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동안 국내 PC업계는 급격한 수요확대에 힘입어 연평균 30%의 매출 신장을 기록해왔다. 판매가 둔화되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할인판매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소비자들의 구매의욕을 부추겨 자신들이 세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창고마다 제품이 쌓여있고 대리점에도 본사에서 밀어낸 제품들이 경기가 회복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사상 최악인 현재의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은 PC사업의 근본적인 구조조정 외에는 없다는데 인식을 같이 한다.
국내 PC업체들은 연간 2백만대의 좁은 내수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그 결과 팔면 팔수록 적자가 확대되는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지난해 컴퓨터사업부에서만 사상 처음 1조원의 매출을 올린 삼성전자나 8천여억원의 매출을 올린 삼보컴퓨터의 경우 실제 PC판매에서 얻은 이익은 거의 없다는 게 정설이다. 팔아도 이익을 내지 못하는 사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모순 속에서 국내 업체들은 그동안 시장점유율 확대경쟁에 몰입해온 셈이다.
일반가정과 함께 PC시장의 또다른 축을 지탱하는 공공기관에서는 제조원가에 못미치는 덤핑입찰이 관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업계는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보다는 여기에 동참, 행정당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국내 업체들은 어느 업체와는 협력이 가능하지만 또다른 업체와는 협력이 불가능하다는 사업 이외의 논리에 얽매여 수익이나 판매를 올릴 수 있는 방법도 스스로 포기하고 있고 소비자들의 구매의욕을 불러 일으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한 제품보다는 경쟁업체의 제품과 비슷한 기능을 채용해 기류에 편승하는 형태의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무조건 최고를 찾도록 최고 성능의 제품을 주력으로 광고 및 영업력을 집중하고 아직 소프트웨어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제품을 기본으로 채용하는 방법 등으로 잘못된 구매관행을 정착시켰으며 이로 인해 소비자들에게 불신을 심어준 것이 국내 PC업계의 모습이다.
따라서 국내 PC업계가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단기간의 매출이나 시장점유율 확대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늘리고 국내 PC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주력해야 한다.
이제는 업계 스스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업체들간 소모전보다는 상호협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채산성이 없는 품목에 대해서는 과감히 정리, 전문성을 강조할 수 있는 제품을 집중 개발, 육성하는 등 분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최근들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글로벌체제 속에서 국내 PC업체들의 경쟁상대는 우리 기업이 아닌 세계 유수의 기업이며 전문성 없이는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세계 컴퓨터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이 국내 PC업계가 마련하고 있는 자구책의 근간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양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