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에서 아산으로 가다보면 한때 독립기념관 후보지로 유명한 아산시 배방면 세출리가 나온다.
80년대 들어 천안과 아산 국도변에 하나둘씩 대학이 들어서면서 현재는 10여개 대학이 터를 마련, 신흥 대학메카로 부상하고 있다.
그들 중 유독 시선이 모아지는 곳은 1백만평이 넘는 넓은 대지 위에 10여채의 대리석 건물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호서대다. 호서대는 천안지역에서 가장 활기넘친 대학으로 개교와 동시에 전기.전자.컴퓨터 계열을 특성화 학과로 지정, 집중적인 육성을 해오고 있다.
반도체관련 국책연구소 등 몇몇 정부지원 연구소가 입주해 있으며 국가사업으로 한창 관심을 모으고 있는 지역테크노파크도 이 지역은 호서대가 주도하고 있다.
호서대 첨단계열의 급부상은 한 노교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뤄지고 있다. 서울대에서 37년간 재직하면서 전자계산소장과 컴퓨터신기술연구소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국내 전자공학계의 이론가인 황희융 교수가 그 주인공.
그가 호서대로 자리를 옮긴다고 하자 일부 인사들은 총장자리를 염두에 두고 있는 모양이라며 설왕설래가 있었으나 그의 청렴성과 장인정신을 잘 알고 있는 대부분의 인사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의 현재 직함은 호서대 전자공학과 교수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정념퇴임후에 명예교수로 자리를 옮긴 것과 달리, 정년퇴임을 한참 남기고 호서대행을 결정한 것에 대해 그는 『호서대는 정부와 사회의 아무런 지원없이 대학 스스로가 일류학생을 양성하려는 학교측의 의지가 그동안 나의 삶의 철학과 일치해 주위의 극구 만류에도 불구하고 옮겼다』면서 그는 대학평가의 사회적 편견을 강하게 비판했다.
황 교수는 『학력고사 점수로 대학의 우열을 일찌감치 평가하는 지금의 잣대보다는 대학의 4년을 마치고 졸업하면서 자신이 입학할 때보다 얼마만큼 실력이 늘었는지 여부로 대학의 우열을 평가하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라고 말하면서 호서대는 학창시절에 어느 대학보다 많은 공부량을 소화하는 대학으로 졸업 때에는 입학성적과 비교,가장 우수한 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불리한 조건을 뒤집으면 유리한 조건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강석규 총장의 경영철학을 무척 좋아한다. 강 총장과의 인연에 대해 황 교수는 『서울대에 재직하면서 강 총장이 운영하는 컴퓨터학원의 외래강사 시절에 처음 만났다』면서 『기독교적인 삶을 통해 노력하는 인재양성에 주력하고 있는 강 총장의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런지 호서대는 사회교육 사업이 활발하다. 지역에서 처음으로 사회교육원과 전산교육원을 개설했고 서울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호서전산전문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황 교수가 직접 기획하고 관여했다.
황 교수는 30년이 넘게 2세 교육을 맡아오면서 지금처럼 의욕이 넘치는 시절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사회는 최고의 사람도 필요하지만 노력하는 사람이 더욱 소중하다』는 평소의 교육소신을 가지고 있다. 호서대가 그런 자신의 교육철학에 가장 적합한 대학이란다.
그는 학위을 받고난 이후에 책을 가까이 하지 않은 교수를 무척 싫어한다. 기자와 인터뷰하는 날 그는 여러 신문에 게재된 「연구실에서 숙식하는 교수」 관련 기사의 스크랩을 보여주면서 『연구에 승부를 하지 않는 교수들이 많은 대학은 발전할 수 없을 뿐더러 자신에게도 불행하다』며 『선진 대학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연구실의 불이 꺼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대 재직시절엔 추운 겨울날에도 연구실에서 밤을 지새운 경우가 비일비재했으며 동료교수들은 밤을 지새운 날 이른 아침 캠퍼스에서 산책하고 있는 그를 보고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지금도 그런 생활은 계속되고 있다. 그는 공학계 교수 가운데 가장 많은 저술활동으로도 유명하다.
지금까지 70여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지난 5년동안에도 10권의 책을 새로 출간했다.
많은 저술활동에 대해 그는 『천성인 것 같다』고 겸손해 했다. 그러나 그의 왕성한 저술활동은 많은 독서량과 지칠줄 모르는 연구활동의 결과물임에 두말할 나위가 없다.
주위에선 그런 그를 한마디로 『걸쭉한 입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도의와 인정의 멋을 아는 공학계의 신사』라고 기억한다.
그는 절실한 크리스찬이다. 저술활동을 통해 받은 많은 인세는 후진양성을 위해 대부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또 개척교회인 서울공릉 중앙교회를 직접 세우기도 했다.
그는 수업시간에 종종 학생들이 수업준비를 하지 않고 들어오면 『수업준비를 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가르칠 필요가 없다』면서 수업을 하지 않는다. 황 교수는 요즘 몇가지 큰 일들을 준비하는 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하나는 천안지역에 충남테크노파크 조성사업이다. 그는 『천안에서 아산을 잇는 도로변은 10여개 대학들과 그들을 필요로 하는 5백여개의 기업들이 자리잡고 있는 천혜의 입지조건을 갖고 있다』면서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또 하나는 1만여권이 넘는 컴퓨터관련 장서를 호서대에 기증하는 일이다. 황 교수는 국내 단일 장서로서 가장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며 기증식의 즐거움은 정년퇴임 직전에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학술적 가치가 있는 장서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도록 누군가가 별도의 도서관을 마련해 줬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황 교수는 끝으로 후배학자들에게 「사고의 거품」을 빼고 「겸허한 마음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1인1기를 갖기 위해서는 20년이상을 꾸준히 해야만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하는 황희융 교수는 국내 공학계의 강직한 철학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황희융 교수 주요 약력
·60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74년 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공학박사)
·80년 서울대 전자계산소장
·83년 미국 플로리다대학 객원교수
·89년 서울대 컴퓨터신기술 공동연구소장
·93년 호서대 교수(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