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30)

사내는 리모컨을 조작하여 천장의 화면을 바꾸었다.

밖이었다.

밖의 풍경이 카메라를 통하여 천장의 화면으로 나타났다. 사내가 리모컨을 조작하는 대로 카메라의 위치가 변화하는 듯, 화면으로 창연오피스텔 밖의 풍경이 차례로 움직이며 나타났다. 어설프게 걸려 있는 마포쪽 하늘의 붉은 기운이 화면에 나타났고, 이제 차량 통행이 이루어지고 있는 서대문쪽 도로가 보였다.

사내는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리모컨을 통해 계속 화면을 조정했다. 광화문 네거리. 이제 맨홀에서 솟구치는 연기도 많이 줄어 있었다. 사람들도 없었다.

통신복구 차량이 통신케이블을 이미 확보한 공간으로 하치시키는 모습이 화면으로 보였다.

천장의 화면에 종로 쪽의 풍경이 잡혔다. 종로 쪽도 마찬가지. 연기가 사그라지고 있는 맨홀 부근으로 복구용 통신케이블이 내려지고 있었다. 시청 쪽도 마찬가지였다.

맨홀 속으로 복구요원이 투입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맨홀 속의 열기가 식고, 쏟아 부은 물을 퍼내려면 한동안 시간이 걸려야 한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투입된다고 해도 맨홀, 그 좁은 공간에서의 작업은 한계가 있다. 이미 절체는 끝나 통신망은 회복되었을지라도 일동은행 온라인 회선은 맨홀 속의 케이블이 연결되어야만 회복될 수 있다. 내일, 게임이 완료되는 내일까지 복구는 불가능하며, 만일 회복된다 해도 이미 제2차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무적의 게임, 결코 에너지가 닳지 않고 죽지도 않는 게임. 게임의 운용자는 탁월했고, 프로그램 또한 완벽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사내는 길게 담배연기를 뿜어대며 다시 화면을 바꾸었다. 뿌아아아아- 길게 울려대는 디주리두 소리가 이어졌고, 화면으로 거미의 아랫배 부분이 클로즈업되어 비쳤다.

수컷 거미는 페니스가 없었다. 암컷과 마찬가지로 아랫배 가운데 구멍만 휑 하니 뚫려 있었다. 페니스가 없는 상태로 사랑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섹스 보조기구가 필요했다. 악골더듬이, 수컷의 섹스 보조기구는 악골더듬이로 불렸다.

수컷 거미는 더듬이에 자신의 정액을 담고, 한동안의 전희 끝에 암컷의 질에 쏟아 붇는 섹스 보조기구로 그 더듬이를 활용하는 것이다.

섹스 보조기구.

인간사회에서도 왈가왈부 말이 많은 섹스 보조기구를 거미는 이미 사용하여 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