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컴퓨터 하면 으레 메인프레임이었다. 사용자들은 터미널을 통해 메인프레임에 접속했다. 터미널은 자체 처리능력이 없어 메인프레임의 컴퓨팅 파워를 이용해야 했다. 따라서 이를 더미 터미널이라 불렀다. PC와 비교해 멍청하다는 의미에서다.
그런데 이 바보 터미널이 최근 들어 네트워크 컴퓨터(NC)란 이름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NC는 지난 95년 미국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회장이 공식 발표해 화제를 모았는데 각종 소프트웨어와 자료를 중앙 컴퓨터에 저장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가져다 쓰는 개념이다. 별도의 저장장치를 달 필요도 없고 또 소프트웨어를 별도 구매할 필요가 없으니 가격은 쌀 수밖에 없다.
흔히들 네트워크를 컴퓨터라고들 한다. 그만큼 네트워크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개인 사용자를 위한 고성능 PC를 네트워크의 클라이언트로 채용하는 것은 꼭 양복입고 고무신 신는 꼴이요, 롤스로이스를 타고 자장면 배달하는 격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사용자들은 PC기능의 20%밖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NC는 컴퓨팅 문화에 많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당초 중앙집중식에서 출발한 컴퓨팅 문화는 PC 및 서버의 등장으로 탈중앙집중식, 즉 분산처리방식으로 변모했다. 그런데 최근들어서는 또다시 중앙집중식으로 회귀하는 현상, 다시 말해 Recentralization 바람이 불고 있다. 메인프레임 시장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NC가 이같은 추세를 더욱 부추길 것임은 분명하다.
최근 LG전자에서 NC를 개발하고 오는 9월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국내 처음이요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IBM 호환 PC로 시작해 줄곧 선진국 꽁무니를 쫓아다니기만 하던 국내 컴퓨터업계로서는 새로운 세계 시장을 이끌어갈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이 제품은 디지털의 스토롱암 CPU와 자바OS1.1버전을 채용, 사상 처음으로 「윈텔」의 영향권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인텔의 CPU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를 채용하는 한 독점의 횡포는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LG전자의 NC는 윈텔이 언제까지나 윈텔로 남아있을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실속있는 컴퓨팅 세상, 사용자들을 생각하는 컴퓨팅 세상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기대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