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부품 전문업체 인수합병이 국내 부품산업발전에 오히려 역효과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기업들의 부품업체 인수합병이 부품사업 자체를 키우기보다 주로 첨단 정보통신 산업진출을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최근 몇년간 공격적인 인수합병(M&A)를 통해 중견 부품업체를 인수한 대기업 및 중견그룹들이 잇따라 정보통신업체로의 변신을 서두르면서 피인수업체의 기존 부품사업은 겨우 명맥만 유지되거나 축소조정되는 등 입지가 크게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95년 국내 굴지의 데크메커니즘 및 튜너 전문업체였던 한국마벨을 인수해 한솔전자로 법인을 전환하고 전자업종에 뛰어든 한솔그룹은 당시 굴지의 사운드카드 업체였던 옥소리를 비롯, 광림전자, 한화통신을 잇따라 인수한 이래 사운드카드, 팩스모뎀, 모니터 등 컴퓨터 주변기기업체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한솔은 이어 지난해 충북 진천에 대단위 복합공장을 마련, 여러 곳에 산재한 계열 공장을 통폐합해 기존 음향부품사업은 해외공장 위주로 운영하고 대신 기존 컴퓨터 주변기기사업과 장차 무선 LAN, PCS 등 그룹차원에서 정보통신부문에 주력할 것을 최근 공식 선언했다.
지난 61년 설립돼 90년대 초반까지 세계 5대 스피커유닛 업체의 하나로 명성을 쌓았던 삼미기업을 94년 말 인수한 엔케이그룹(당시 남경그룹)은 지난해 상호까지 아예 엔케이텔레콤으로 바꾸고 정보통신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엔케이는 현재 정보통신그룹으로서 면모를 갖춘다는 목표 아래 무선호출기, 모뎀, PC조립 등 PC부문과 위성방송수신기, 텔리텍스박스, 통신접속장치 등 통신기기로 이어지는 신규 전략사업에 주력함으로써 모태인 스피커유닛 매출은 전체의 30%에도 못미치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중견 PCB업체인 한일써키트(현 이지텍)를 인수한 EZC그룹은 미국 본사의 기술과 유통망을 토대로 정보통신 제조 및 공급업체로 변신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지텍은 본격 사업개시 1차연도인 올 상반기 전체매출 4백98억원 중에서 PCB는 1백2억원에 불과해 과거 주력품목이었던 PCB비중이 4분의1로 크게 떨어졌다.
중견 스위치, 가변저항기, 센서업체였던 정풍물산을 인수한 기아인터트레이드 역시 올 초 경영권 이양과 동시에 상호를 스마텔로 바꾸고 기존 통신사업부를 주축으로 인터넷 접속장치 등을 출시하며 정보통신부문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스마텔은 장차 부품사업은 해외공장을 중심으로 현상유지로 제한하고 정보통신부문에 주력할 방침이다.
또한 수년전 데크업체인 AV코리아를 인수한 공성통신은 최근 데크 제조업을 사실상 포기하고 고속삐삐, 무선전화기, 디지털위성방송수신기 등에 주력하고 있다. 공성통신은 올 초 전체 매출목표 6백10억원중 데크는 1백55억원에 불과하고 나머지를 정보통신에 할당해 놓은 상태다. 서미스터업체인 도신정밀을 인수하며 전자부품사업에 참여한 신호그룹계열 신호전자부품도 최근 서미스터 등 부품 제조업을 거의 포기한 상태다.
<이중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