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멀티미디어라는 단어가 일상생활 속에서 스스럼없이 사용되고 있다. 일반인들의 관심이 꽤나 높았던 것은 물론 매스컴의 적극적인 보도도 커다란 역할을 한 것 같다. 이에 맞추어 출현했던 CD롬이라는 저장매체는 불에 기름을 뿌리는 역할까지 했다. 멀티미디어는 곧 CD롬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도 그리 이상할 이유는 없다. 80년대의 컴퓨터 열풍은 전국의 모든 세탁소가 대변을 해주었다는 우스갯소리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멀티미디어의 왜곡된 현상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제는 「멀티미디어는 곧 인터넷」이 돼버린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인터넷 열풍이 그만큼 강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어찌 됐건 멀티미디어는 이래저래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해진 단어가 된 것이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멀티미디어라는 단어에는 익숙해져 있는 반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은 점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특히 멀티미디어 콘텐츠 부문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되는 반면 우리만이 우리 정서에 맞는 것을 개발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부가가치가 대단히 높은 분야임에도 별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대기업은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데 소극적이었고 정부는 구호에만 그치는 멀티미디어 육성책을 발표했다. 열악한 환경의 여러 중소기업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혼자 연구하며 멀티미디어 관련 제품들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동안 멀티미디어 콘텐츠 개발에 있어서 우리는 너무나도 소극적이었다.
얼마 전에 말레이시아 국어문화원 소속의 연구원 일행과 태국의 교육부 소속 교육연구 관리 일행이 멀티미디어의 전반적인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했었다. 서로간의 상황을 솔직하고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두 나라는 멀티미디어 SW 개발사가 4, 5개사고 출시된 타이틀도 얼마 안되며 외국 제품들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92년이나 93년도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했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침소봉대된 면도 없지 않았지만 두 나라 관리들은 우리의 현황이 상당히 앞선 것으로 평가했다. 때문에 멀티미디어의 일반적인 제작관련 분야뿐 아니라 멀티미디어 개발사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인 지원과 개발사 입장에서 바라는 정부의 지원에 대해 궁금해했다. 제도를 연구하는 관리의 입장에서 일선 현장을 발로 뛰며 외국의 사례를 수집하고 파악하려는 그들의 진지한 자세가 참으로 신선하게 보였다. 그들의 성실함이 현재 우리와의 4, 5년간 격차를 곧 만회할 수 있으리라는 우려와 함께.
최근에는 여러 기관에서 멀티미디어 콘텐츠에 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콘텐츠 제작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멀티미디어 관련 종사자로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동안 정통부에서 추진하던 정보화 촉진 진흥기금이 멀티미디어 SW 제작사에게는 유일한 지원방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콘텐츠 개발에도 지원 대책이 수립되고, 한국정보문화센터 부설 정보기술교육원에서 멀티미디어 관련 전문가를 장기적으로 양성, 이를 필요로 하는 산업체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한다.이는 초고속정보통신망이라는 인프라가 구축되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멀티미디어 콘텐츠 개발 인력을 확보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에 대한 중요성을 정부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아무쪼록 정보기술교육원의 노력과 정성이 좋은 결과를 얻기 바란다.
<박지호 세광데이타테크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