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권리 찾기의 진전인가, 아니면 아직도 계속되는 공급자 편의 위주의 정책인가.
지난 2년여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외전화 사전선택제가 오는 11월 1일 전면 시행된다. 이 제도가 운용되면 일단 그간 데이콤을 통해 시외전화를 사용하던 소비자들은 식별번호(082)를 누르지 않고 한국통신과 마찬가지로 곧바로 지역번호를 돌리는 형식의 시외전화를 이용할 수 있다.
또 기존 한국통신과 데이콤을 혼용해서 사용하던 사람이라면 이 기회에 한국통신이든 데이콤이든 어느 한 사업자를 지정, 일관된 고객서비스를 기대할 수도 있다. 시외전화 사전선택제란 전화 가입자가 이처럼 데이콤과 한국통신을 고를 수 있는 것이다.
정통부 사업자 관련연구원 학계로 구성된 사전선택제 조정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기존 시외전화 사용 082(데이콤)고객을 대상으로 회송용 우편물을 보내 데이콤 고객으로 가입하겠는지의 여부를 묻는다.
데이콤에서 우송한 가입신청서를 전달 받은 소비자 중 한국통신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설문용지에 자신의 의사를 표시, 이를 다시 발송하면 된다. 물론 답신이 없으면 데이콤 고객으로 자동 처리된다.
이번 설문 우편물 발송 대상은 3백만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전체 전화 가입자를 대략 2천2백만명으로 추산할 때 매우 한정된 규모다. 이런 제한된 대상자를 선택한 것은 시외전화 사용시 데이콤(082)을 누르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빈도수를 기준으로 할 때 30% 이상을 082로 활용하는 소비자에 한정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데이콤 고객군으로 불린다.
물론 평소 시외전화의 70% 이상을 한국통신망으로 사용, 한국통신 고객군으로 분류돼 이번 설문대상에서 제외된 사람들 가운데 만약 데이콤으로 전환하고 싶은 소비자가 있다면 전화안내센터를 찾으면 된다. 080-770-5000에 접속, 우편 신청서를 요청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번 계획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일단 진일보한 시책으로 평가받는다. 추진 경위야 어찌됐건 한국통신과 데이콤 가운데 한 곳을 선택할 수 있고 데이콤 고객이라면 082를 누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기왕에 소비자 선택권을 넓혀주려거든 모든 전화 가입자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시한다. 어차피 시외전화 사업이 경쟁체제에 돌입했다면 그 경쟁의 룰은 사업자간의 기득권 다툼이나 정책적 편의성보다는 소비자권리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전격 결정된 사전 선택제에 앞서 한국통신이 얼마전 시내전화 요금을 인상하고 시외의 경우에도 그간 10%가 비쌌던 데이콤과의 요금 차이를 4.9%까지 좁힌 것은 정부와 양 사업자간에 일종의 암묵적(?)인 사전 정지작업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사전 선택제의 실시 시기와 대상을 둘러싸고 한국통신과 데이콤이 워낙 팽팽한 입장 차이를 보여 왔기 때문에 이같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이다.
일반 소비자들로서는 사전 선택제에 의해 별로 얻을 것이 없고 그나마 데이콤 고객들은 식별 번호를 누르지 않는다는 편리성을 앞세우지만 한국통신과의 전화 요금 격차가 줄어들어 실익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전체 전화 가입자를 대상으로 우편 설문조사를 실시할 경우 소요되는 엄청난 비용과 절차상의 문제점, 양 사업자간의 견해차 때문에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조정위로서 어쩔 수 없는 대안으로 이번 사전 선택제 내용이 꾸며졌다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이같은 어정쩡한 사전 선택제는 소비자 주권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정부와 사업자간의 이해조정을 우선한 인상이라는 것이다.
기왕에 시행할 사전 선택제라면 한국통신 데이콤 고객을 망라해야 하고 거기에 따르는 비용과 절차상의 문제점은 소비자들이 걱정할 일이 아니라 정부와 사업자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지적도 뒤따른다. 심지어 꼭 설문조사를 돈과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이 투입되는 우편물에 의존해야 하느냐는 반론도 제시한다.
<이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