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5주년특집] 부품업계의 해외 생산기지

국내 전자부품업계의 최대 관심사중 하나는 세트업계의 생산기지 해외이전과 부품의 글로벌소싱 추세다. 국내 세트업체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은 부품업체들로서는 기존 공급물량을 보전하기 위해 세트업체의 일거수 일투족에 귀추를 주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해외로 생산기기를 이전하고 있는 세트업체들은 최근들어서는 부품구매선을 전세계로 개방하는 이른바 「글로벌소싱」전략을 구사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어 부품업체들이 세트업체를 따라 해외에 동반진출하더라도 장밋빛 미래는 고사하고 안정적인 성장마저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주요 세트업체들은 컬러TV,오디오,VCR 등에 이어 올해부터는 전자레인지,세탁기,냉장고등 주력 가전제품을 거의 대부분 해외에서 생산할 예정이다. 특히 아직까지 최대 부품수요 품목인 컬러TV 및 VCR의 경우 삼성전자,LG전자,대우전자 등 가전 3사가 모두 올해 해외 생산비중을 60~75%선으로 크게 확대할 방침이어서 앞으로는 이들 가전제품의 해외생산량이 국내생산을 크게 앞지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들어서는 그동안 주로 TV,VCR 등 5대 가전제품에 채용되는 범용가전부품 위주였던 부품업계의 해외생산이 컴퓨터, 통신, 산전 등 산업용 전자부품 분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는 국내 부품업체들의 해외진출이 기존의 인건비 절감을 위한 우회생산에서 현지 생산 및 현지 직접판매로 근본적인 성격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며 이에따라 범용 가전부품에 이어 산업용 부품업체들의 저임금국 진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추세는 최근 이동통신기기의 가격파괴 등으로 비롯된 산업용 부품의 가격경쟁력 확보가 관건으로 부각돼 앞으로 더욱 본격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미 한계에 도달한 국내시장에서 탈피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또한 급격히 약해지는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되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현지생산, 현지판매 체제를 갖추고 있는 세트업체들의 해외이전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에 따라 부품업체들이 세트업체를 따라 생산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추세가 올해도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며, 세트업계의 세계화에 대응한 부품업계의 세계시장 개척도 크게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생산공장을 해외로 이전한 업체는 삼성전기, LG전자부품, 대우전자부품 등 국내 종합부품 3사에서부터 콘덴서, 저항기, 인쇄회로기판(PCB), 스피커, 모터 등 일반 부품 전문업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일반화돼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국내의 경기침체로 내수판매 확대에 한계가 예상됨에 따라 해외 생산 및 판매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우선 종합부품 3사의 경우를 보면 삼성전기는 올들어 포르투갈,태국,멕시코,중국 등의 5개 공장을 모두 가동한데 이어 동남아 및 남미지역에 각각 1개씩의 해외공장을 추가건설하기로 하고 인도,필리핀,스리랑카,베트남 등을 대상으로 투자환경 조사를 벌이고 있다. 또한 해외지점도 올해 설치한 태국,터어키,중국 심천지점을 포함, 모두 15개로 늘렸으며 금년말까지는 다시 아일랜드,인도,폴란드에 추가 설치할 예정이다. 이어 오는 2000년까지 해외사업 부문을 9개국, 11개 공장과 30개의 해외지점으로 확대하는 한편 해외지점의 대형화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LG전자부품도 멕시코공장과 중국공장을 본격 가동한데 이어 LG전자의 인도네시아 진출계획에 따라 인도네시아에 추가진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 회사는 또한 현재의 홍콩 및 일본지사 이외에 미국,싱가포르,인도 등에 추가로 지사설치를 검토하는 등 해외영업망도 대폭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해외공장 설립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우전자부품 역시 현지공장 건설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전세계에 폭넓게 퍼져있는 이들 현지공장을 판매망으로 적극 활용한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 회사의 해외공장은 폴란드공장을 포함해 5개국, 8개에 이르고 있으며 대부분 지난해 말부터 본격가동에 들어간 상태다.

또한 중견부품그룹인 삼화콘덴서그룹의 경우도 중국 천진공장에 이어 작년말부터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근교 공업단지에 삼화콘덴서, 삼화전기, 삼화전자, 삼화텍콤 등 그룹계열사별 현지법인을 설립, 금년말 생산을 목표로 공장건설에 한창이다.

최근 종합부품업체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있는 태일정밀의 경우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의 쌍태전자에 이어 최근 산동성의 영성쌍태전자를 완공, 중국내 2곳에 대규모 종합전자단지를 구축하고 HDD,FDD,자기저항(MR)헤드 등 컴퓨터 부품은 물론 올해부터 통신용 수정디바이스,팩시밀리용 감열기록소자(TPH) 등의 대량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요 업종별로 상황을 살펴보면 우선 브라운관업체들만 하더라도 말레이시아, 독일, 베트남, 미국, 멕시코, 중국, 프랑스에 이어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지역에서도 새로운 생산기지를 갖추고 본격 가동에 들어갈 막바지 채비를 하고 있다. 삼성전관의 경우 이미 말레이시아, 독일, 멕시코 등 3개국의 생산공장에서 브라운관을 양산하고 있고 LG전자는 지난해 8월부터 착공에 들어간 인도네시아 베카시市 지역에 위치한 공장을 최근 완공, 설비구축을 완료했으며 오리온전기도 도시바와 합작으로 추진해온 인도네시아 브라운관공장을 오는 10월부터 본격 가동할 계획이다.

PCB업계는 신성기업이 아일랜드에 단면PCB 1개 라인을 갖추고 생산에 들어갔으며 대덕산업, 세일물산 등이 중국 천진지역에 생산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또한 코리아써키트가 미국에, 대덕전자가 필리핀에 새한전자가 멕시코 티후아나공장에서 각각 단편 샘플과 단면 및 양면 단면PCB생산라인을 구축하고 본격 생산하고 있다.

콘덴서업계의 경우 일본을 제외한 동양최대의 전해콘덴서업체인 삼영전자공업이 중국 청도공장의 전해콘덴서 생산을 본궤도에 올려놓은 것을 비롯해 삼화전기,한국트라콘,서진전자,서룡전자,고려전기 등이 국내의 마일러콘덴서 생산라인을 일찌감치 중국으로 이전했으며 극광전기, 대영등 AC콘덴서업체들도 중국 생산확대를 꾀하고 있다.

커넥터업계에서도 우영이 지난 95년 중국공장을 가동한데 이어 이달중에 중국 제2공장을 완공해 중국에서의 IC소켓 및 각종 커넥터류 생산을 확대할 계획이며, 지난해 대우전자와의 동반진출 형태로 멕시코공장을 가동한 연호전자도 최근 TV, 모니터용 하네스의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또한 90년대 초에 멕시코, 말레이시아 등에 진출한 유림전원공업, 대희전자 등 잭, 소켓류업체들도 최근들어 현지공장의 생산량을 크게 늘리고 있다.

스피커업계에서도 지난 92년7월부터 중국 광동성 동관 현지공장에서 스피커유닛을 생산, 삼성전자 중국 오디오공장과 동남아 지역의 세트업체에 제품을 공급해온 삼성전기가 현지주문 증가에 대응, 최근 준공한 제2공장에 제1공장의 설비를 이전, 지난달부터 스피커 생산량을 종전보다 20만개 정도 늘어난 월 3백50만개 규모로 끌어올렸으며 북두도 중국 천진공장에 3개 생산라인을 증설, 월 1백20만개 규모로 늘릴 방침이다. 이밖에 베트남에 임가공공장을 두고 있는 LG포스타도 현지업체와 논의를 거쳐 생산규모를 월 1백만개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며 한국음향도 중국 산동성 연태공장의 생산량을 금년말까지 올초에 비해 60%가량 늘어난 50만개 규모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추가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서미스터업계에서도 동양화학그룹 계열 전자부품업체인 동양산전이 최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근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이달중에 CPU냉각용, SMPS냉각용 등 컴퓨터 쿨링 팬모터를 주력 양산할 예정이며, 신기산업, 제임스텍, 가이오전자 등도 중국에 공장을 마련, 센서조립생산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밖에 PC 저장매체 및 OA기기용 스테핑모터업체인 모아텍도 중국 동관에 현지공장을 신설해 최근 본격 양산에 착수한 것을 비롯, 저항기업체인 한륙전자도 지난 95년에 건설한 중국공장을 본격 가동하는 등 전자부품업계의 해외진출 경향이 콘덴서, 저항 등 일반 회로부품에서 스위치, PCB, 커넥터 등 기구부품에 이르기까지 가전용에 이어 산업용 전자부품도 본격적인 세계화시대가 개막, 국내 전자산업의 구조조정을 대변하고 있다.

부품업계의 이같은 해외생산이전 추세는 지금까지 몸에 베온 국내 전자산업의 흥망에 좌우되는 「해바라기 인생」에서 벗어나 세계시장을 무대로 한 글로벌화의 대열에 들어서고 있음을 여실히 나타내주고 있다.

<주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