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정보통신 선진국에서 한국인의 이름으로 연구나 경영의 최고 지위에 오르는 것은 남다른 의지와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또한 이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한국 정보통신산업의 영예와 희망이기도 하다. 전자신문은 창간 특집 2회에 걸쳐 현재 해외에서 탁월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의 정보통신인, 특히 세계 정보통신시장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을 무대로 각자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와 명성을 쌓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과정과 그들 가진 생각에 대해 들어보기로 한다.
<편집자>
전세계에 퍼져 있는 IBM 연구센터의 심장부인 T J 슨연구소. 내로라 하는 석학들이 포진하고 있는 이 연구소에서 홍세준(53) 박사의 연구활동은 단연 두드러진다.
60여편의 연구논문에 특허 17건, 세 차례의 「IBM 아웃스탠딩 이노베이션상」 수상을 포함해 미국 전기전자기술자학회(IEEE) 컴퓨터 분과가 수여한 공로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에서 그의 연구노력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데이터 마이닝 분야에서 그의 연구업적은 육중한 무게를 지닌다. 또 핵심 프로젝트 결과물 뒤에는 항상 그의 이름이 뒤따라 다닌다.
IEEE 공로상등 수상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IEEE 회원으로 활동하는 홍 박사는 IBM 연구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소중한 「브레인」임에 틀림없다. 연구소 요직을 두루 거치고 일선에서 직접 연구하는 재미를 놓칠 수 없어 현재 연구원으로 되돌아왔다는 그를 인터넷을 통해 만나보았다.
어린시절부터 과학기술에 대한 꿈을 키워온 홍 박사는 특히 인간 두뇌구조나 두뇌작용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고 한다. 그런 그의 관심이 현재의 인공지능 분야, 즉 인간 두뇌작용을 모방하는 기계(컴퓨터)의 지능적 행위에 대해 연구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대학도 이의 배경이 되는 학문으로 전자공학을 택했다. 국내에서는 전자공학에 대한 인식이 척박했던 시절, 학문에 대한 그의 열정은 결국 미국 유학길로 이어져 당시 사이버네틱스(인공두뇌학)연구로 유명한 일리노이대학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오류수정코드로 박사학위 『사이버네틱스는 어떻게 보면 현재 인공지능이라는 분야가 생기기 전에 주로 동물과 기계의 조절이나 내부조직의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는 학문이었습니다. 이 분야에서 중요한 학설이 「생물체가 외부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체온이나 맥박 등 중요한 변수의 작용을 일정한 범위 안에서 유지하는 것은 지능적 효과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라며 홍 박사는 사이버네틱스라는 학문을 간략히 설명했다.
69년에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의 곱하기 연산에서 생길 수 있는 오류 제거코드에 관해 쓴 논문으로 일리노이대 전기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홍 박사는 곧바로 뉴욕주 퍼킵시에 있는 IBM 시스템 개발본부의 RAS그룹에 입사, 본격적인 연구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컴퓨터나 통신, 회로의 신뢰성을 높이는 이른바 「폴트 톨러런트 컴퓨팅」분야에서 첫 연구생활을 시작한 그는 83년부터 인공지능분야 연구를 맡기 시작, 지금까지 자타가 공인하는 이 분야의 최고권위자로 활동해오고 있다.
그는 『특히 인공지능은 기계의 지능적인 작업을 추적하는 연구라고 봅니다. 초기의 꿈이었던 인간 두뇌작용에 대한 연구대신 그 행위를 모방하는 방법에 관한 탐구로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라고 말해 그의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우연히 시작된 것이 아님을 알게 했다.
인공지능 활용성 무한 80년대 홍 박사는 주로 인공지능 분야에서 지식기반시스템(Knowledge Based System) 연구 총책임자로 관리와 연구의 총괄업무를 맡았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생소한 이 연구관리직은 연구와 관리능력에서 상당한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미국 현지인들도 맡기 힘든 직책이라는 평이다. 특히 홍 박사는 한국에 이러한 제도가 없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했다. 『한국에도 듀얼 커리어(dual career) 제도를 도입해 자유롭게 관리와 연구직을 왕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지적한다.
94년 데이터 마이닝에 관한 알고리듬을 개발한 것을 계기로 홍 박사는 94년 설립된 데이터 마이닝 그룹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의 데이터 마이닝연구는 인공지능에서 기계습득(Machine Learning) 분야라고 한다.
인공지능분야의 전망에 관한 질문에 대해 그는 『컴퓨터 보급이 일반화되면서 점차 사용자와 쉽고 자연스럽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응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 인공지능의 역할이 강조되는 실정이고 앞으로 그 기여도는 더 커질 것입니다. 지금도 인식기술 발달로 키보드 입력 방식에서 벗어나 필기체와 음성만으로 컴퓨터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단계입니다』라며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기술의 무한한 활용가능성을 강조했다.
앞으로의 연구방향과 관련한 답변에서 그는 『당분간 데이터 마이닝 분야에 관한 연구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모델 신뢰도를 더욱 높이는 것이 목적이지요. 또 장기적으로는 여러가지 응용분야에 기계화하는 방법을 향상시키는 연구를 해볼 계획인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인공지능이 아닌가하고 생각됩니다』라며 데이터마이닝분야에 대한 강한 애착을 나타냈다. 운이 좋으면 어려서부터 꿈꾸던 인간 두뇌작용에 대해 공부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의 연구 열정이 결국 유력한 노벨상 후보자의 하나로 꼽히는 결과를 낳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현재 한국의 기술개발 환경에 대해 느끼고 있는 점을 말해달라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한국내 대학교수진의 개방이 필요합니다. 대부분 대학 전산과에서 열명도 못돼는 교수들이 세분화된 분야를 강의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래서는 세계수준의 강의를 할 수가 없지요. 그리고 한국의 정보통신이 세계 수준에 이르려면 역시 세계 수준의 기술자들을 교육, 산업계에 유치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기술 선진국의 경우 세계각국에서 계속적으로 인재를 유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겁니다』라며 개방적인 기술개발 환경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