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에 앞서가는 나라가 21세기를 좌우할 것이라는 미래학자들의 예측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세계 각국은 이른바 정보고속도로 건설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이는 정보화의 수준이 향후 국가경쟁력 확보에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보화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이에 대한 이해와 의지가 한 국가 지도자가 갖춰야 하는 필수적인 덕목으로 여겨지고 정보화는 국가정책의 1순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본지는 창간 15주년을 맞아 제15대 대통령선거에 나선 4대 정당의 후보를 대상으로 질문서를 통해 그들의 정보화에 대한 철학과 정보화정책 등을 알아보았다. 이번 기획은 전자, 정보통신업계에 종사하는 본지 독자들이 차기 정부의 정보화정책을 예측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정보화에 대한 비전은 특히 젊은 유권자에게 중요한 후보선택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현 가능한 정보화 관련 공약과 실천방안을 밝혀주십시오.
▲그동안의 정보화 관련 정책은 조직구조와 업무관행을 그대로 둔 채 부분적인 효율화만을 추구해온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특히 정부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부처간 영역시비나 주도권 다툼으로 인해 국가적인 정보화사업이 파행적으로 이루어져 온 사례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정부의 정보화정책은 위기에 빠진 경제를 회생시키고 국민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보화는 더 이상 기존의 정치, 경제구조가 가지고 있는 비효율을 미봉하는 차원에서 추진돼서는 안됩니다. 우리 경제가 처해 있는 위기상황을 해소하고 작고 효율적인 정부의 구현을 위해서는 정보화를 통한 투명하고 효율적인 정부 및 경제 운용의 원칙이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재 정부 주도의 정보화 추진체계를 민간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정부의 역할은 거시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정보화의 진전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데 집중돼야 합니다.
-정보화에 대한 최고통치권자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앨 고어 부통령이나 싱가포르의 고척동 총리,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 등이 정보시대의 새로운 지도자상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통치권자의 정보화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지도층의 정보화 의지가 부족해 전문가가 마련한 추진계획이 늘 예산집행의 후순위로 밀린다는 지적이 높습니다. 이에 대한 소견을 말씀해주시지요.
▲정보화는 기본적으로 미래지향적인 정책분야입니다. 따라서 지도층의 인식과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비단 국가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보화는 초기투자 비중이 큰 반면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또한 정보화의 성과는 조직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업무관행이나 제도를 상당 부분 바꿔야만 획득될 수 있습니다. 단위업무 위주로 처리되던 개개의 업무를 통합하고 부서의 편제를 개편하는 등 이른바 리엔지니어링을 통해서만 비로소 정보통신기술의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보화에 대한 노력이 기존 조직의 이해관계나 반발로 중도에 좌절되는 예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최고 정책결정자는 정보화에 대한 폭넓고 깊은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하며 동시에 정보화정책 판단과 실행을 곁에서 보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정보화에 관련된 모든 정책을 조정하고 통합적으로 관장할 수 있는 조직을 두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정보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지만 분야별 정보화사업을 거시적인 안목으로 통합한 범국가적인 정보화 청사진이 없다는 지적입니다. 이는 국가자원의 효율적인 투자를 위해서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간의 업무중복이나 이해상충을 조정하기 위한 방안은 가지고 있습니까.
▲나는 정보화를 정보의 교환과 공유를 촉진시켜 현재의 업무처리 방식이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고 향후 경제, 사회에 새로운 운용 패러다임을 도입하려는 시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정보화사업은 단위업무의 전산화 정도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컨대 공공부문의 주민등록 전산화, 부동산 전산화, 교육 전산화사업 등이 각각 해당부처의 단기적 필요성을 위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결국 실질적으로 정보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용자의 편의나 실질적은 수요는 무시되고 운용기관의 필요와 수요가 우선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죠. 그 때문에 정보화를 더욱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보화정책을 총괄할 수 있는 강력한 추진기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정보화 추진 전담기관을 만든다면 이는 대통령 직속기관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입니다.
-컴퓨터 보급이 6백만대에 이를 정도로 국민의 정보화 욕구는 팽창하고 있지만 정작 정보사회의 구성원을 키워내는 교육환경은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보기술이 국력을 좌우하는 미래 정보사회에서 치명적인 결과로 나타날 것이 분명합니다.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일부에서는 초등하교 교과과정에 컴퓨터 교육을 포함시키거나 대학 수학능력시험에 수험생의 정보화 수준을 반영하자는 등의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에 대한 이 후보의 생각을 밝혀주시죠.
▲정보화에 대비한 교육환경이 미흡하다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를 표합니다. 또한 초등학교부터 컴퓨터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정보화에 대비한 교육은 단순히 정보통신 이용기술을 습득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열린 정보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창조적이고 유연성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따라서 정보화 교육은 학생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분석, 해결하기 위한 각종 정보기술의 체득과 활용을 통해 개방된 지식사회로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인재양성에 무게중심을 실어야 할 것입니다. 대학입시라는 기존의 폐쇄적인 틀 안에서 학생의 정보화 수준을 계량화하는 것은 사회봉사활동의 점수화와 같은 폐단을 재연할 우려가 높다는 판단입니다.
-선진국일수록 과학기술이나 정보통신, 환경 등의 분야 전문가들이 행정부와 국회 등에 발탁돼 정책 입안과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비전문가들이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분야의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집권시 논공행상식 인사를 지양하고 전문분야만큼은 전문가를 발탁할 의사는 없는지요.
▲현재 정부의 정책입안 및 결정과정에 학계나 연구계, 업계 전문가들의 참여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주요 정책입안 때 이러한 전문가 그룹을 분야별로 활성화시켜 더욱 효율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데 활용할 계획입니다. 물론 정책입안이 이루어진 후에도 공개적으로 다양한 계층 이해관계자들과의 공청회를 통한 공개적인 의견수렴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전자 및 정보통신업체들이 국내의 각종 행정규제를 피해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일이 늘면서 산업공동화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하이테크분야가 국내의 고비용, 저효율 산업구조를 피해 해외로 이전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만.
▲이는 국내 산업구조의 근본적인 수술 없이는 치유가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째 고임금, 고금리, 고지가(高地價), 고물류비 등의 고비용 구조를 국제수준으로 낮춰야 합니다. 임금인상과 물가상승의 악순환 고리를 단절하고 합리적인 노사관계의 정착을 유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전자, 정보산업의 수도권 내 공장입지를 허용하고 부지를 제공하는 한편 입주방식을 현재의 분양형태에서 장기임대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판단입니다.
두번째로 행정규제를 대폭 완화해 기업의 경쟁력 확보노력을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경제규제는 원칙적으로 자유화하고 규제가 불가피한 경우에도 가급적 사전규제를 사후규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물론 규제 기준의 투명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상거래가 활성화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 7월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인터넷을 통한 상거래의 무관세 원칙을 발표, 충격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인터넷 상거래가 활성화할수록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수준인 대미 무역역조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은데 이에 대한 대응방안은 있는지요.
▲대미 무역역조의 심화는 품질경쟁력 열세, 현지 유통체계의 미흡, 브랜드 이미지의 낙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추진하는 전자상거래에 대한 무관세화 원칙은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역조 현상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나라로서는 기술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현재 대미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자본재 수입을 줄여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연간 4천억달러가 넘는 미국 정부조달시장에 적극 참여하고 체계적인 현지 유통망을 구축해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국내 전자상거래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사전 준비작업을 착실하게 수행하는 한편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안권 국가들과의 공조체제를 구축해 미국중심의 전자상거래 무관세화 움직임에 공세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미국이 「쥐라기공원」이라는 영화 한 편으로 자동차 3만대 수출에 맞먹는 부가가치를 창출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무공해산업이면서 대표적인 정보기술 집약산업인 영상산업 육성방안은 갖고 계십니까.
▲우리나라의 영상산업은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인해 전반적인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영상산업이 외국에 전면 개방됩니다. 그렇다고 21세기 최대 유망산업인 영상산업을 그대로 방치할 수만은 없습니다.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영상산업 진흥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제작시설 임대시장을 활성화하고 전문인력 양성과 교육시설 확충을 적극 추진해야 합니다. 입장권 발매 및 매표 전산화 등 전산망 구축을 통한 영상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시급한 일입니다.
동시에 정부로서는 영상산업의 발전을 막고 있는 심의제도를 민간 자율의 등급 심의기구에 이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영화법,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 공연법, 방송법, 종합유선방송법, 전기통신사업법 등으로 다원화해 있는 관련법률을 일원화하거나 중복된 부분을 조정하는 작업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일 통일에 동, 서독간의 통신교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처럼 남북한간 통신교류는 민족의 염원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통일시대에 대비한 통신교류 방안과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남북한간 정보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밝혀주기 바랍니다.
▲현 단계에서 남북한간 통신교류는 끊어진 한반도의 허리를 잇기 위한 최적의 대안이라는 판단입니다. 통신교류가 남북한의 단절된 역사를 직접적이고 신속하게 이어주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통신은 상호간 통행이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직접 교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통신교류는 북한의 개방을 촉진시키고 북한 주민의 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추진돼야 합니다.
-정보화가 필연적인 추세기는 하지만 정보의 부익부 빈익빈으로 인한 빈부격차의 확대나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사생활 침해, 음란정보 유통으로 인한 저질문화의 확산 등 역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혀주십시요.
▲산업화가 그랬듯이 정보화도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부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 때문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면 자칫 더 큰 사회비용을 치러야 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국제사회에서도 인터넷 상거래와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제반 부작용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작용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정보화를 막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정보의 빈부격차에 대해서는 고도 정보서비스의 발전에 걸맞은 새로운 보편적 서비스 개념의 정립과 실현으로 대응해 나가야 합니다. 기존의 전화서비스만으로는 더이상 국민들의 정보통신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경쟁환경과 시장개방환경 아래서도 인터넷을 포함한 고도 정보서비스에 대한 보편적 서비스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 정부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개인정보 보호나 음란정보에 관한 문제는 기본적으로 민간사업자들이 자율적으로 규제하자는 것이 통신강국의 주장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문화적인 특성이나 국민정서 등을 고려해 정부 차원의 법, 제도 정비를 통해 우리에 맞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판단입니다.
<정리=최승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