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세계로.」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좁은 내수시장을 둘러싸고 출혈경쟁을 벌여왔던 국내 컴퓨터업체들이 이제 시선을 해외로 돌리고 있다.
수출은 물론 해외에 연구소를 세우고 생산거점을 구축하는 한편 전세계를 대상으로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마케팅도 본격 전개하고 있다. 생산에서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글로벌시대에 걸맞은 기업경영을 시작한 셈이다.
무역장벽이 철폐돼 내수시장과 해외시장의 경계가 없어진 만큼 글로벌화는 국내 컴퓨터업체들이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컴퓨터산업의 경우 일본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핵심부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함으로써 선진국들의 제품과 비교할 때 손색이 없는 것으로 평가돼 10년 전 세계 컴퓨터생산기지로서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기도 하다.
실제 황금시장이라 불리는 모니터, 프린터,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CD롬 드라이브 등 PC용 핵심 주변기기 부문에서 지난 10여년간 국내 시장을 장악해온 미국, 일본, 대만산 제품들을 제치고 시장주도권을 확보했으며 연간 수백억원에 이르는 수입대체효과를 올리고 있다는 사실은 국내 컴퓨터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국산 데스크톱PC와 노트북PC가 국내 시장을 평정한 데 이어 지난해부터 미국 및 일본 등으로 수출되기 시작했으며 외산일변도의 프린터시장도 국산 엔진을 채용한 제품이 점차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며 수입제품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또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의 경우 삼성전자가 내수시장에 절반을 공급하는 등 수입품을 완전히 따돌린 상태이며 일본산이 주류를 이뤘던 CD롬 드라이브 분야도 LG전자와 삼성전자, 태일정밀 등 3개 업체가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 올해 국내 수요의 90% 이상을 장악, 전세계 광기억장치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차세대 제품군으로 주목받고 있는 멀티미디어 보드 부문에서도 가산전자, 두인전자, 디지탈로직 등 국내 업체들은 미국 메트록스사와 ATI, 다이아몬드, 크리에이티브랩, STB, 넘버나인, 허큘리스 등 세계적인 멀티미디어 영상보드 전문업체보다 한발 앞서 제품개발은 물론 DVD 인증까지 끝마치고 양산에 나선 상태다.
이들 업체는 이미 미국, 일본, 중국 등지의 대규모 유통상들을 통해 제품 초기물량을 선적했으며 DVD 영상타이틀이 일제히 출시될 4, Mbps분기부터는 수출이 3∼5배 급신장할 것으로 예상돼 주목된다.
결국 컴퓨터산업의 글로벌화 전략 추진은 이같은 제품경쟁력 향상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며 이를 통해 세계 일류상품을 개발, 해외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제가 되는 셈이다.
올해부터 본격 추진되고 있는 컴퓨터업체들의 글로벌화 전략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해외생산 및 영업거점 구축이다.
국내 컴퓨터시장에서 선두자리를 굳히고 있는 삼성전자는 글로벌화 전략에서도 가장 앞서 나가고 있다. 이미 미국 유수의 PC전문업체인 AST를 인수, AST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모니터분야에서는 중남미, 유럽, 중국, 동남아 등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구축하면서 세계적인 PC 및 모니터업체로서 입지를 구축해 가고 있다.
또 삼보컴퓨터가 미국에 생산법인, 영국과 독일에 판매법인을 설립한 데 이어 일본에도 현지법인을 설립,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영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며 대우통신도 프랑스를 비롯 대우그룹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러시아 등 동구지역으로의 수출확대를 위해 현지판매법인 설립에 이어 생산라인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멀티보드전문업체인 가산전자는 올 초 초고속 영상처리용 보드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 업체로 인정받고 있는 재즈멀티미디어사를 전격 인수해 미국을 포함한 10여개 국가에 마케팅 거점을 마련했으며 두인전자도 지난해 말 미국내 수출거점인 엘레시드사를 설립, 미주지역에 수백만달러의 멀티미디어 영상보드를 수출하고 있다. 이밖에 석정전자도 미주지역, 호주, 네덜란드, 일본, 남미 등지에 협력사를 늘려 수출처를 다변화한다는 전략을 추진중이다.
생산 및 판매를 위한 해외거점을 설립하는 것 외에도 해외 현지실정에 맞는 제품개발 및 신기술습득을 위한 해외 연구개발(R&D)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는 것도 국내 컴퓨터업체들의 커다란 변화다.
삼성전자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현지연구법인인 SISA에서 멀티미디어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삼보컴퓨터도 미국 현지법인에 연구개발을 전담하는 STG를 신설, 무선컴퓨터기술 및 데이터통신기술 등 미래지향적인 기술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우통신도 소프트웨어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 뉴저지에 R&D센터를 설립한 데 이어 인도 뉴델리에 2백만달러를 투자, 소프트웨어 R&D센터를 설립했다. 이밖에 현대전자도 미국 현지법인인 HEA에 컴퓨터연구개발조직인 PC R&D센터를 구성, 10여명의 해외전문인력을 영입함으로써 멀티미디어 기술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연구개발, 생산에 이어 국내 컴퓨터업체들은 글로벌전략의 마지막단계인 마케팅 부문에서도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이미 가전에서 채용했던 글로벌광고를 올해부터 본격 추진하고 있으며 중견전문업체들은 마케팅비용을 줄이면서도 최대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사이버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대형 PC업체들이 인터넷 홍보전에 일제히 돌입한 데 이어 최근에는 가산전자, 두인전자, 훈테크, 태일정밀, 제이씨현시스템 등 멀티미디어 주변기기업체들도 가세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한 제품, 기업 이미지 홍보뿐 아니라 제품판매와 애프터서비스, 구인구직, 관련소프트웨어 제공, 소비자불만 접수 등 다양한 부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해외에 제품 알리기와 함께 새로운 마케팅 채널 창출이란 두가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전세계 네티즌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 홍보판촉전이 이제 국내에서가 아닌 해외시장에서도 본격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내 컴퓨터업계가 글로벌화를 추진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사람이다. 지금까지 내수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던 국내 업체들로서는 글로벌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확보하는데 소홀히 해왔으며 이것이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시대를 이끌어가는 전문인력 확보를 위해 삼성, LG 등 대형 PC업체들은 미국, 일본 등 현지법인에서 해외전문인력을 일부 채용하는데 그쳤지만 지금은 연구에서부터 생산, 판매에 이르기까지 현지법인의 인력을 대부분 현지에서 직접 채용,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이들 대기업 외에 수출확대를 겨냥한 중견 멀티미디어업체들 또한 해외영업에 능통한 전문인력을 대거 영입하고 나서 주목된다.
가산전자가 재즈멀티미디어사를 전격 인수한 데 이어 일본, 러시아, 유럽 등지에서 올해 안에 30∼40여명의 고급엔지니어와 마케팅 인력을 충원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파격적인 급여조건을 내걸고 대대적인 인재 사냥을 벌이고 있다. 두인전자도 미국내 현지법인인 엘레시드 상주인원을 현재 17명에서 연말까지 30명선으로 늘릴 계획이며 석정전자도 호주, 미국, 브라질, 러시아, 중국, 네덜란드, 일본 등 주거래 국가의 현지사정에 밝은 해외 영업인력을 추가로 확보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일본, 대만 기업들은 이미 3∼4년 전부터 글로벌 전략을 추진, 미국내 실리콘밸리에 대단위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해외 사정에 밝은 전문인력을 발굴해 세계 시장을 주도해왔다』면서 『국내 업체들도 경쟁력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한 해외인력 유치와 세계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 선진국 업체와의 무한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해야 살아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승욱·남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