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5주년특집] 무지개 쫓는 영상산업

지난 3월 18일 오후 4시(현지시간 3시). 중국 북경인민대회당에서 한중문화교류 모임이 열렸다. 삼성영상사업단의 주선으로 열린 이날 모임은 우리 영화가 중국시장에 직접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자리였다.

중국의 정관계인사와 영화 「아편전쟁」을 감독한 사진 등 각계인사 2백여명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삼성영상사업단은 6월부터 북경, 상해, 장춘 등 중국대륙의 3백여개 극장에서 일제히 우리영화 「은행나무 침대」를 개봉하기로 중국측과 합의한 것. 가장 폐쇄적인 중국시장에 우리 영화를 직접 배급할 수 있는 길을 열 정도로 우리 영상소프트웨어업체들의 힘이 커졌다.

지금까지 우리 영상업체들이 해외시장에 진출하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영상업체들의 해외시장진출은 개별업체나 지명도 있는 감독 및 영화배우를 중심으로 해외영화제에 참가하는 수준에 머물러 왔다.

우리 영상물을 외국으로 수출하는 마케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는 대기업들이 영상시장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대기업들의 참여는 관련업체들의 경쟁을 격화시켜 수입증가를 부추기는 역작용을 낳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국내시장에 안주해 왔던 업체들을 해외시장으로 진출하도록 했다. 대기업들의 진출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영상업체들은 국내시장만을 보고 영화 등을 제작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 영상시장은 지난 95년 3조1천억원에서 오는 2000년에 무려 4조8천억원으로 커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나 우리 영상업체들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수요만을 겨냥해선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영상업계의 한 관계자는 『영상산업의 시장규모가 수조원에 달하지만 사업을 영위하기에는 우리 시장이 너무 협소하다』면서 『우리 스스로 해외시장공략에 나서야 고사위기에 빠져 있는 우리 영상산업을 살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우리 영상업체들은 해외시장진출을 위해 다단계 전략을 펼치고 있다. 특히 예전과 달리 조직과 전문인력을 두고 수출시장의 개척에 나서고 있다. 우선 영상업체들은 우리 영상물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각종 영화제나 음반견본시, 게임전시회에 직접 부스를 마련해 참가하고 있다. 삼성영상사업단은 올초 세계 영화업계 VIP들이 집결하는 프랑스 칸영화제에 한국영화 판매부스를 차렸다. 여기에 김성수 감독의 신작 「비트」를 비롯, 이진석 감독의 「체인지」, 강제규 감독 「은행나무 침대」, 장현수 감독 「본투킬」 등 35편을 전시 상연했다.

또한 음반업체들도 문화체육부의 지원 아래 지난 5월21~23일 홍콩에서 열리는 97년 국제음반박람회(MIDEM)에 참가, 공동 부스를 설치하고 한국음반의 홍보를 벌였다. 국내음반에 관한 영문 안내서와 우수가요-국악 연주들을 모은 샘플 CD를 제작해 박람회 기간중 해외음반관계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아울러 막고야 등 12개 중소게임개발업체들이 공동으로 유럽시장진출을 위해 지난 9월7일부터 11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ECTS(유럽컴퓨터무역전시회)에 참가했다. 이들 업체는 문체부로부터 5천만원 내외의 전시비용을 지원받아 전시회 기간내에 공동으로 부스를 확보, 한국관을 설치하고 자신들이 제작한 시뮬레이션게임 등 20여편의 다양한 게임을 전시, 소개 및 현지바이어들과 수출상담을 벌였다.

이같은 적극적인 방식을 통해 우리 영화 및 게임 등이 해외시장진출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삼성영상사업단은 「은행나무침대」나 「깡패수업」 등을 중국과 일본 등으로 수출했다. 쌍용정보통신의 자회사 씨네드림은 최근 미국 월트디즈니 만화영화배급사인 브에나비스타와 애니메이션 「전사라이언」의 배급계약을 맺었다. 또 신생영화사 비손텍은 가족영화 「표류일기」의 세계배급을 위해 현재 미국 브에나비스타와 판권가격을 협의중에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네 2000은 9월에 코믹액션 「현상수배」를 호주 시드니 빌리지 로드쇼극장에서 개봉하고, 성과가 좋을 경우 호주 전역으로 개봉관을 확대할 예정이다. 이 회사는 주인공 박중훈을 제외한 주요 배역을 호주 배우로 캐스팅하고 스태프도 현지인 중에서 선발하는 등 제작 전단계부터 치밀하게 호주배급을 추진해 왔다.

음반분야에서도 국내가수들의 해외진출이 활발하다. 국내에서 발표된 1집부터 7집까지의 개인앨범 중에서 중국어로 바꿔 부른 곡들을 모아 편집한 김완선의 베스트앨범이 중국 음반제작사인「스타메이커」를 통해 출시될 예정이다.

또한 중소게임개발업체들은 대만 등 동남아시아시장과 일본 및 유럽시장에 속속 진출하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소프트맥스는 「창세기전」을 일본과 유럽시장에 수출했으며 LG소프트는 「스톤엑스」를 일본과 대만 등에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게임박스는 우리 중소업체들의 게임을 대만협력사를 통해 대만지역에 수출하고 있다.

다음 단계로는 우리 영상업체들의 현지화전략이다. 영화나 게임 등을 현지에서 제작하거나 현지업체들과 공동으로 제작하는 방식이 추진되고 있다. 특히 우리 영화업체들은 궁극적으로 영화의 본고장인 할리우드에 진출한다는 목표 아래 우회적으로 미국업체들과 손잡고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대우는 미국의 오라이온 스튜디오영화사와 공동으로 한미합작영화 「아메리칸 드래곤」(감독 랄프 해머커)을 제작했다. 또 웅진미디어는 지난 4월말 신상옥 감독의 신프로덕션과 제휴, 6백만달러를 투자해 영화 「out of Juris Diction」를 제작, 세계시장에 배급하기로 했다. 시네 2000은 또한 폴란드 MS필름과 안성기 주연의 영화 「이방인」을 공동제작, 배급사를 선정해 세계배급을 맡길 계획이다. 이 작품에는 프랑스 제1의 영상그룹 카날플러스도 투자사로 참가하고 있어 유럽쪽 배급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 MBC PD출신 고석만 감독이 이끄는 영화사 드림서치는 알 카포네 시대 전설적인 한국계 갱스터의 일대기를 그리게 될 「제이슨 리」 제작비를 약 2백70억원으로 책정하고 미국 메이저사에 대한 사전판매 50%, 창업투자사의 투자 20~30%, 갭론방식(투자액의 70%가 조성될 경우 투자한다는 계약)에 의해 이를 조달할 계획인데 이미 지난 칸영화제 견본시에 이 작품을 출품해 60억원의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그밖에도 드림서치는 뉴욕대 출신의 신예 진원석 감독의 데뷔작 「투 타이어 드 투 다이」를 뉴욕 현지에서 제작, 현재 후반작업중이다. 독립영화로 유명한 아이보리사가 미국측 제작사로 참여한 이 작품에 미라 소르비노와 금성무, 김혜수 등이 출연했다. 특히 이 회사는 「그랑블루」 「레옹」의 뤽 베송 감독이 이끄는 뤽베송프로덕션과 장기 제휴계약을 맺고 「히말라야」(제라르 피르 감독) 등 5편의 영화를 공동제작하기로 했으며 인터라이트 픽처사가 촬영중인 스티븐 시걸 주연 폴 모네 감독의 액션영화 「더 패트리어트」에도 투자했다.

반대로 국내에 진출해 있는 직배사들이 우리 감독들과 합작,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어 우리영화의 세계시장진출은 더욱더 활기를 띨 전망이다. 월트 디즈니는 강우석 대표에게 제작비의 50%를 투자하는 대신 해외 배급권과 국내 비디오 판권을 갖는다는 조건으로 영화제작을 제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음반업체들은 외국에서 활동중인 한국인 출신 음악가를 포섭, 해외시장진출을 노리고 있으나 한국인 출신 음악가들도 모두 음반메이저사에 속해 있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국내업체들은 현지가수들을 발굴하기 위해 음악학교에 지원하는 등 다각적인 방안을 쓰고 있으나 아직까지 뚜렷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게임분야에서는 마니텔레콤과 풀바람시스템이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IBI에 사무실을 두고 직접 온라인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처럼 국내업체들이 활발히 해외시장에 진출하고 있지만 영상업체들의 앞에 놓여있는 벽은 상당히 두텁다. 우선 영화나 음반, 게임분야에서 미국과 일본, 유럽 등의 메이저들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 업체들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특히 이들 메이저들은 막대한 자본력과 마케팅력을 앞세워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어 국내 업체들이 이들 벽을 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전망이다.

그러나 국내업체들은 이들 메이저들이 놓치고 있는 틈새시장을 겨냥, 나름대로 마케팅을 펼칠 경우 메이저의 벽을 뛰어넘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영상업체들은 현지 마케팅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영상업체들은 현지 마케팅업체들을 이용하기 위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하나로 통합되어가고 있는 세계영상시장에서 우리의 강점을 살리기 위해선 인터넷을 이용한 마케팅을 펼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원철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