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가 국가 미래를 걸고 추진중인 멀티미디어 슈퍼 코리도어(MSC)와 불가분의 인물은 모하메드 마하티르 수상.
지난해 8월 수도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멀티미디어 아시아 96」에서 마하티르 수상은 MSC 계획을 처음으로 천명했다. 구상에서부터 구체적인 자본 유치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으로 MSC를 주도하고 있어 말레이시아 국민조차도 『마하티르 수상이 없다면 MSC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마하티르 수상의 경력은 다소 이채롭다.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싱가포르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말레이시아 연합 전국기구(UMNO) 초창기 멤버로 정치에 뛰어들어 몇차례 좌절과 함께 의사로 돌아가는 등 굴곡있는 정치 역정을 겪고난 후 81년, 수상으로 정권을 잡게 된다. 그는 정치, 경제, 외교를 비롯한 각 부문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내치의 안정을 바탕으로 국익을 앞세운 소신있는 외교는 세계 지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하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경륜이 특히 빛을 발한 부문은 경제. 전임자들의 경제정책을 계승한 그는 외국자본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 경제성장 기반을 일궜다. 개방화, 자유화, 민영화를 통해 계속되는 고도성장을 이어온 그는 말레이시아의 미래를 선진국 진입을 향한 장기계획 「비전 2020」에 실었다. 2020년까지 제조업을 중심으로 국가 공업화를 도모, 경제성장을 이어가는 동시에 산업 부문간 균형발전을 실현하고 생산성을 높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비전 2020을 바탕으로 마련한 계획이 바로 MSC.
『통신이나 자본, 사람, 재화의 흐름이 자유로워지고 국경이 사라지고 있다. MSC는 이같은 새로운 시대 흐름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MSC는 승자와 패자가 있는 제로섬 사회가 아니다. 각국과 기업이 서로 혜택을 누리는 공생사회 창조를 목표로 한다.』 마하티르 수상이 MSC의 의미를 설명한 한 대목이다.
정부의 수반이 앞장 서서 국가 미래를 만들어가는 모습은 다른 국가의 부러움을 사는 동시에 MSC의 실현성에 더욱 신뢰도를 얹어주고 있다. 이외에도 MSC와 관련한 일련의 그의 언행은 MSC의 방향이 제대로 돼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상은 올해 71세의 나이도 잊고 미국, 일본,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을 말 그대로 발로 뛰면서 정부 및 업계 관계자들과 만나 정력적인 세일즈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남다른 업무 수완은 그와 만나본 사람들은 누구나 인정한다. 대부분 국가의 정상이 상대방과 만나 악수나 포옹, 사진촬영, 식사로 이어지는 의례적 만남을 갖는 것과 달리 격식을 차리지 않은 모임에서 돈을 끌어내는 실제적인 만남을 갖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이 동남아 사업본부를 정보 허브로 유명한 싱가포르가 아닌 말레이시아에 세우겠다고 결정했고 2005년 완료 예정인 MSC에 선마이크로 시스템스, NTT 등이 입주를 약속할 정도.
행동을 뒷받침하는 치밀성도 주목할 만하다. MSC의 실현을 위해서는 정보통신 인프라 못지않게 법률 등 관련정책 보완이 중요하다는 점을 전제조건으로 지적한 그를 놓고 세계에서는 미래 첨단 정보사회 「정보통신 입국」에 대한 개념이 서 있는 몇 안되는 지도자라고 높이 평가한다.
마하티르 수상에 대해 「사회, 정치적 민주화를 경시한 독재자」라는 지적도 있다. 또 「90년대 말레이시아판 박정희 대통령」이라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불굴의 의지와 추진력에 대해서는 비판자들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성장을 위해 민주화를 지연시켰다는 혹평에도 아랑곳없이 마하티르 수상은 20세기 민주화 지도자보다는 21세기를 지향하는 경제 지도자로 기억되기를 더 원하고 있는 듯하다.
<허의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