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에 미국 최대의 케이블TV 회사인 TCI사의 CEO인 존 머론씨는 한 모임에서 『디지털 위성방송(DBS)이란 Don’t Be Stupid(바보같은 짓 하지 마라)라는 의미가 아닌가』라는 조크로 참석자들을 웃긴 일이 있다. 물론 이 에피소드는 미국의 디지털 위성방송 시장이 성숙되기 훨씬 이전에 있었던 이야기다. 현재 TCI는 미국 디지털 위성방송 시장에서 제2위 업체인 프라임스타(PRIMESTAR)의 대주주다.
이처럼 미국의 디지털 위성방송 시장은 최근 몇 년 동안에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가입자는 이미 4백50만명을 돌파했다. 특히 지금까지 절대적인 강자로 인식돼온 케이블TV를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하고 있다. 그 이유는 화질과 음성품질이 뛰어난데다 케이블TV보다도 요금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미국 디지털 위성방송 회사의 하나인 USSB(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새털라이트 브로드캐스팅)사의 한 관계자는 『이제 TV 시청자들은 케이블TV 회사에 전화해 케이블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됐다고 말할 정도다』고 말한다. USSB의 자료에 따르면 디지털 위성방송 가입자중에 절반 가량이 케이블TV로부터 전환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미국 시장분석가들은 오는 99년 미국의 디지털 위성방송 가입자가 1천만명을 돌파하며, 그 대부분이 케이블TV로 부터의 전환에 따른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6천5백만 가입자를 거느린 케이블TV는 미국에서 여전히 최대의 힘을 가진 TV방송 서비스다. 그러나 그 장래성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 케이블TV 업체들은 지난해부터 디지털 위성방송에 맞서기 위해 새로운 세트톱박스(STB)를 가입자들에게 제공하거나, 비디오 온 디맨드(VOD)와 전화 등의 통신서비스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과 비교할 때 사정은 다르지만 지난달 25일부터 국내에서도 EBS가 무궁화위성을 이용한 위성과외 방송을 서비스하면서 디지털 위성방송과 케이블TV간 본격적인 경쟁체제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여파로 용산상가 등지에서는 과외방송을 시청하기 위한 위성수신 안테나와 세트톱박스의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고 한다. 또 위성교육 방송을 중계해 방영하는 케이블TV업계도 가입자 증가로 위성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이같은 두 사업자의 상호보완적 관계는 3년 이상 입법이 지연돼온 새 방송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위성방송 사업자 선정이 이뤄지더라도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두 사업자들이 당장은 「파이」를 키우는 데 주력하겠지만 케이블TV 가입자가 어느 정도 포화상태에 이르는 오는 2000년쯤에도 그럴 것인가는 의문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상황은 좋은 예가 될수 있다. 다소성급한 면이 없지 않지만 이번 EBS 위성교육방송 출범를 계기로 두 사업자의 위상에 대한 관련기관 및 업계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