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5주년특집] 인터넷과 전자산업.. 가전

인터넷의 등장으로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소수 전문가나 컴퓨터 마니아들만의 특권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기본적인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즉 PC가 더 이상 사무기기가 아니듯이 인터넷 역시 일반가정에서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시대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현재 인터넷 보급이 가속화되면서 하드웨어산업 측면에서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분야 중 하나는 가전업계다. 인터넷이 「정보가전」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제품과 시장을 형성하는데 물꼬를 트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의 웹TV사가 TV를 통해서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는 세트톱박스를 출시하고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한데 이어 한국과 일본의 가전업체들은 줄이어 인터넷TV를 출시했다.

이처럼 가전업체들이 인터넷TV시장에 적극성을 보인 것은 컴퓨터업계에 앞서 양방향 TV로 귀결될 것으로 예상되는 「정보가전」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정보가전시장은 아직까지는 가전업체가 기득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무주공산이다. 인터넷으로 문자나 그래픽 정보는 물론 TV프로그램을 포함한 동영상을 제공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PC가 기존 TV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미국의 「웹TV사」의 배경과 이 회사를 둘러싼 여러가지 움직임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웹TV는 그동안 PC의 전유물로 인식되었던 인터넷 검색을 TV로도 가능하게 했다는 점만으로도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지만 리얼오디오로 유명한 「프로그레시브 네트워크」사와 「서프워치」사 등이 앞다퉈 기술을 제공하고 세계적인 전자업체인 소니와 필립스가 웹TV용 세트톱박스 생산을 맡기로 하는 등 일개 벤처기업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쟁쟁한 파트너십을 과시했다.

여기에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빌 게이츠와 폴 엘렌이 개인적으로 웹TV사에 출자한 것은 이 회사가 단순히 전망이 밝은 유망기업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급기야 마이크로소프트는 올 상반기 4억2천5백만달러에 웹TV사를 인수, 정보가전 및 차세대 TV시장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다.

소비자가격이 대당 3백29달러에 불과한 세트톱박스를 TV에 연결해서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게 했으며 전자우편, 채팅 등은 물론 신용카드 판독기를 장착, 홈쇼핑을 실현시켰다는 점에서도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됐다.

향후 정보가전제품군은 VCR, 게임기, 전화기 등 기존제품끼리 복합되거나 전혀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면서 소비자들앞에 등장할 전망이다. 그러나 가전산업계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고 있는 제품은 역시 TV다.

웹 TV 이후의 인터넷TV가 상품화된 동향만을 보면 가전업체들이 정보가전 시장을 창출해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TV의 자리를 넘보는 컴퓨터업계의 위협에 대한 가전업체들의 대응으로 보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동안 뚜렷하게 시장이 양분되왔던 PC와 TV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진입하면서 기술, 시장 등 전반적인 측면에서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데 컴퓨터업계는 값싸고 사용하기 쉬운 개념의 PC를 앞세워 가전영역으로 시장을 확대하려고 하고 있으며 가전업계는 TV에 정보처리 능력을 가미함으로써 가정용 시장에서의 독보적인 자리를 지키려고 하는 추세이다.

지난해말부터 게이트웨이 2000, 컴팩, IBM 등 미국의 컴퓨터업체들은 「PCTV」나 「PC시어터」를 차세대 TV의 후보들로 제안하고 있는 상황이며 선, 오라클 등 네트워크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업체들도 네트워크 컴퓨터(NC)를 내세워 기존 TV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맞서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TV메이커들은 PC보다 사용하기 쉽다는 TV의 장점을 십분 살리면서 PC기능의 일부를 가미함으로써 컴퓨터업계의 안방차지 전략에 대응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의 핵심은 컴퓨터업계와 가전업계의 입장이 상반되기는 하지만 분명한 현상은 컴퓨터와 TV기술의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전업계가 내놓고 있는 인터넷TV는 TV를 중심으로 PC의 일부 기능을 수용하고자하는 가전업계의 의지가 담긴 제품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또 디지털TV로 지칭되는 차세대TV에는 기존 인터넷기능은 물론 양방향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기본적으로 채용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인터넷과 관련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기술은 가전업계에도 핵심 요소기술로 자리잡고 있으며 여러가지 면에서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터넷TV를 비롯한 정보가전제품은 PC와 마찬가지로 마이크로프로세서(MPU) 칩과 운용체계(OS), 그리고 메모리를 장착하고 있다. 물론 펜티엄급 PC에 장착된 것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의 성능이지만 PC의 알고리듬이 기존 가전제품에서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가전업계가 확보해야 할 별개의 기술이다.

또 이 제품을 PC보다 경쟁력있게 만들기 위해선 차별화된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가전제품 전용 OS나 정보검색 프로그램 및 MPU시장도 급속한 속도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며 하드웨어업체와 가전용 소프트웨어 및 핵심 IC업체간 전략적 제휴도 매우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가전기술과 컴퓨터기술이 접목된 정보가전제품은 가전업계의 생 산라인에도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이미 정보가전용 OS나 SW분야의 전문인력이나 컴퓨터 생산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는 생산관리자를 확보하는 문제가 가전업계에는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 볼 때 PC에서 인터넷을 활용하건 TV에서 활용하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하드웨어업계로써 PC업계와 TV업계가 상호간의 영역을 넘어 차세대 가전시장을 놓고 벌이고 있는 주도권 문제를 염두에 둘 때 인터넷을 필두로 한 정보가전제품의 등장은 연구개발, 설계, 생산영역 전반에 걸쳐 가전산업계에 연쇄적인 파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유형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