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크루서블

거짓이 인간의 광기와 손을 잡을 때 세상은 악마가 지배한다.악마는 인간의 탐욕 속에 늘또아리를 틀고 있다.사람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놓는 법과 종교,때론 진실을외면하고 거짓과 악의 편에 서 버린다.그래서 영화는 또 다른 「진실 찾기」에 열중한다.

아서 밀러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크루서블」은 거짓에 굴복하지 않는 죽음으로 그 진실을밝히는 작품이다.

한 여인의 육체적 욕망이 가져온 17세기 미국 메사추세츠 세일럼 마을의 한 사건은 진실을 가리는 욕망과 광기가 유효하다고 확신을 준다.에비게일(위노나 라이더)에 의해 저질러지는 이른바 「마녀 사냥」.단 한번 자신과 육체적관계를 가진 유부남 존 프록터(다니엘 데이루이스)와의 사랑을 위한 단순한 소망의 표현이 겉잡을 수 없는 거짓과 광기,폭력과 비극을잉태한다.

숲속에서 몰래 치른 선정적이고 주술적인 「악마의 의식」이 발각되면서 세상은 존재하지도 않은 악마의 노예가 된다.그 인간의 어리석음이 만든 악마는 19명을 희생시킨 뒤 소멸된다. 에비와 몇몇 소녀들이 행하는 거짓에 「혼돈의 시대에 불멸의 잣대」인 노련한 판사도, 목사도 이성을 잃고 마을사람들까지 감염돼 늙은 산파와 착한 농부,신앙심 깊은 수녀까지 악마가 씌웠다며 교수형을 시킨다. 그리고 그 거짓의 힘은 에비의 욕망에 방해가 되는 존의 아내 엘리자베스(조안 알렌)에까지 밀고 들어온다.

데뷔작 「조지왕의 광기」에서 권력의 광기와 인간의 탐욕을 날카로운 블랙유머로 풍자한 영국의 니콜라스 하이트너 감독.이번에 그가 포착한 것은 욕망 속에 숨은 이기심이며 조롱하고싶은 것은 그것을 잠재우지 못하고 오히려 노예가 되는 종교와 법, 인간들의 터무니없는 집단 무의식이다. 감독은 연약하게만 보였던 위노나 라이더의 송곳같이 날카오룬 변신이 점점 광기에 빠져 들면 들수록 이성과 진실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모습을 비장미 속에 감춰진 풍자로 빠르고 긴장감있게 그려간다.

엄청난 여론재판의 공포는 마지막 존과 아내 엘리자베스에 의해 지키고자 하는 진실의 존재를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진실이야말로 영화가 늘 붙잡고 싶은 마지막 희망이자 자랑하고 싶은 신화이다.그리고 마녀사냥의 실체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존 프록터는 그것을 지켜주는 영웅이다.그는 「창녀에게 천국의 자리를 내주었다」「신은 죽었다」고 외친후 스스로 악마와 죄를 뒤집어 쓰고 교수형을 당한다.

그를 진실로 남게 했던 것은 욕망의 광기 앞에 당당하고 애절했던 아내로부터 얻게 된 진정한 사랑의 힘이다.영화는 말한다. 선과 악, 거짓과 진실은 인간의 마음 속에 있다.그리고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경고하고 시험한다. 어찌보면 냉소적인 「크루서블」은 역설적으로 처연하게 그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김혜원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