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자파 인체보호 권고 기준안

우리나라에도 이제 컴퓨터, TV, 휴대폰 등 각종 전자기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에 대한 인체보호기준이 마련된다는 보도다. 환경부는 최근 국내 전자파 피해실태조사와 외국의 보호규제 기준치를 토대로 마련한 「전자파 인체보호 권고 기준안」을 해당 업계와 관련 부처의 의견수렴 작업을 거쳐 내달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아 숨은 「테크노 공해」로 불리는 전자파와 전자장의 유해성 문제는 이제 거의 실질적 폐해로 규정되고 있다. 전자파가 뇌파 및 신경회로를 혼란시키고 체내 누적 때에는 뇌종양, 백혈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과학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암세포 증식은 물론 시력까지 잃게 할 수 있다는 역학조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스웨덴,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자파 피해를 막기 위해 권고기준을 법적 강제 기준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고 또 새 무역규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인구밀도가 높아 전자파에 노출되는 정도가 외국보다 높은 데도 지금까지 학계를 중심으로 인체 유, 무해 논란만 계속해왔을 뿐이다. 전자파로 인한 피해를 철저하게 확인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 때는 이미 우리의 건강이 해쳐졌을 지 모른다. 그런만큼 이번에 환경부가 마련한 전자파 인체보호권고기준안은 이 시점에서 국민의 건강을 고려한 최소한의 대처방안으로 평가된다. 특히 지난해 부산의 아파트 주민들이 인근 변전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을 비롯 정보통신부에 이동기지국 관련 민원 3건, 한국전력에 송전선로와 관련한 민원 14건이 접수되는 등 최근 잇따르고 있는 전자파 관련 민원 및 소송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번에 제시된 전자파 권고기준안을 보면 전자파에서 발생되는 전기장과 자기장 중 전계세기는 국제 방사보호협회(IRPA)의 기준을 따르고 위험도가 더 큰 것으로 알려진 자계세기는 1일 동안 인체가 컴퓨터 등 모든 전자파 발생원으로부터 받게되는 누적량이 1천밀리가우스(mG) 이하가 되는 수준에서 정해졌다. 이번 권고안은 발생원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수용자 입장에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권고 기준이기는 하지만 스웨덴 등 일부 국가에서 권장하고 있는 전자파 인체보호 권고치(2mG)에 비하면 지나치게 완화된 기준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이같은 기준마련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환경부의 주장처럼 IRPA 권고안이 내세우는 인체 유해성 여부가 아직 과학적으로 논란이 있고 일정 기준치 이하에서는 위험성이 없다는 「전자파 무해론」의 입장에서 권고 규정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권고안이 비록 강제 규제치는 아닐지라도 선진국 수준으로 맞출 경우 전자파 피해에 대한 사회적인 여론과 관련업계의 생산비용 증가 등 현실적인 고려가 작용한 것도 한 배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전자파 인증을 받지 못한 전자제품에 대해 판매나 수입 자체를 금지하는 독일과 미국의 경우에서 보더라도 전자파 장해는 신 무역장벽으로까지 떠오르고 있어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파 대응의 어려움은 컴퓨터, 컬러TV, 전기담요, 전자레인지, 전자히터, 계산기 등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전자기기에서 전자파가 발생하고 우리가 알게 모르게 그 피해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결국 전자파 피해에 대한 사전 대책은 안전 기준을 정하는 일만이 아니라 제품생산에서 부터 전자파 발생을 줄일 수 있는 해당업계의 적극적인 연구개발 노력에 달려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현재 전자파 피해 발생 우려가 높은 고압 송전선이 인접한 지역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피해방지 위한 대책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에게 전자파 피해의 심각성을 인식시킬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