孫東洙 <게이브미디어 사장>
신문사의 만화작가였던 윈저 매케이가 「Gertie the Dinosaur」로 문화적 충격을 준 후 애니메이션은 영상 및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하나의 커다란 흐름으로 자리잡게 됐다.
미래사회는 멀티미디어 사회가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특히 미국의 거대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영상 콘텐츠 업체를 인수하는 등 세계의 유수한 영상업체들이 멀티미디어 콘텐츠 분야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미래산업의 핵은 「콘텐츠」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콘텐츠산업 중에서도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핵심산업이 애니메이션이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도 최근 애니메이션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규정하고 이를 적극 지원할 것을 천명한 바 있다. 애니메이션은 영상산업의 꽃으로 캐릭터산업의 핵이며 테마파크산업의 기조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산업의 중요성을 콘텐츠 산업이라는 부분으로만 치중해 볼 수는 없다. 어쩌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애니메이션을 수출하는 국가가 상대국에 행사하는 무언의 문화적 영향력 행사와 그에 따른 문화침투이다. 이는 애니메이션의 주요 수요자가 어린이라는 점에서 그 영향력을 더욱 간과할 수 없다.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월트디즈니의 만화는 이를 보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미국적인 사고방식을 주입시킨다. 수많은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폭력과 섹스에 쉽게 익숙해진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중요성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의 상황은 어떠한가.
모든 산업이 그러하듯이 국내에서 최초의 애니메이션산업은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하청 제작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동안 월트디즈니를 비롯한 수많은 미국의 애니메이션이 국내에서 동화 및 채색되어 제작됐으며 지금도 미국과 일본은 국내 중소 애니메이션 회사의 주요 고객으로 존재하고 있다. 국내에는 이러한 제작을 담당하는 프로덕션이 4백50여개 정도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80%는 미국이, TV애니메이션의 70%는 일본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수많은 외국의 애니메이션을 하청, 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이 취약한 것은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차별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애니메이션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연출의 예술이며 기획의 산업이다.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의 발전을 위한 선결과제는 바로 이 기획과 연출이라 할 수 있다. 사실상 초기단계의 기획에서 애니메이션의 성패는 50% 이상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가격을 통한 경쟁력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인건비는 날로 비싸지고 사방에서 싼 가격으로 비슷한 품질의 애니메이션을 하청할 수 있는 곳은 크게 늘어날 것이다.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는 국내의 애니메이션산업이 채 그 싹도 피워보지 못하고 시들어 버리게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현재의 가격경쟁력 중심의 구조는 빠른 시일내에 창조와 연출을 통한 품질상의 경쟁력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애니메이션산업 전반에 대한 체계적이며 지속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애니메이션의 전반을 통찰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전문인을 키우기 위하여 각급 대학에 애니메이션학과가 신설돼야 하며 현장에서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기획하고 제작할 수 있는 전문 학원이 설립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정부의 투자와 지원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은 이제 걸음마 단계라 볼 수 있다.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과 함께 민간업체와 학교 등이 기획력, 연출력, 테크놀로지의 배양에 쉬지 않고 박차를 가한다면 세계시장에서 선두대열에 서 있는 국내 애니메이션을 볼 날이 그리 멀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