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56)

21:00

뉴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맨홀화재. 뉴스 시작과 함께 TV에서는 맨홀에서 솟구치는 불길이 보이고 있었다. 아나운서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사건을 접한 듯 흥분된 어조로 방송을 하고 있었다.

화재의 개요와 함께 상황은 이미 종료되었지만 현재 불이 계속 타고 있다는 어투로 어두운 현장을 연결해 가면서 방송을 이어가고 있었다.

승민은 컴퓨터를 그냥 켜둔 채 TV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미 초저녁 뉴스에서도 방송이 되었고, 속보로도 여러 차례 방송이 되었지만 새로운 내용인 것처럼 뉴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승민은 컴퓨터 옆에 높여 있는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들고 푸시버튼을 눌렀다. 고장안내방송, 이 전화는 고장 수리중이라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고장. 이미 맨홀화재는 진압되었다고 했지만 혜경의 전화는 계속 고장상태로 안내되고 있는 것이었다.

혜경.

승민은 오늘 저녁 시골에서 올라온 부모님을 소개시켜 주기로 혜경과 약속했었다. 약속장소를 부모님 도착후 전화로 정하자고 했지만 맨홀화재로 전화가 고장상태가 되어 그냥 집으로 모시고 왔던 것이다.

재다이얼. 승민은 전화기의 재다이얼 버튼을 눌렀다. 또로로록. 역시 고장. 고장상태를 알리는 방송이 이어졌다.

승민은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TV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맨홀화재에 관련된 뉴스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통신대란. 아나운서는 통신대란이라는 표현으로 화재사건을 설명하고 있었다.

불꽃이 솟구치는 맨홀. 통신대란. 지금까지 써 내려온 글의 내용과 어쩌면 이렇게 딱 맞아떨어질 수가 있을까.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스러울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대부분 상상력으로 구성한 내용이 오늘 발생한 광화문 네거리 맨홀화재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승민은 다시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들었다.

4백80MHz.

인간에게 가장 부담이 없는 주파수대의 발신음이 귀속을 울렸다.

재다이얼. 또로로록 . 하지만 계속 고장안내방송이 들려 오고 있었다. 승민은 후크 스위치를 눌렀다 놓고 다른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고, 이어 중년 연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