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57)

『누나, 저예요.』

『그래, 승민이구나. 아버지와 엄마는 잘 도착하셨다. 차가 밀려서 고생하신 모양이더라.』

『평상시보다 두 시간은 더 걸렸대요. 그리고 서울 시내에서 움직이는 데도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어요.』

『그래, 그 친구는 연락이 안된다고?』

『네, 혜경이 직장 전화가 고장이라서 연락을 못했어요. 광화문쪽 맨홀에 화재가 발생해서 전화가 고장이 났나 봐요.』

『나도 지금 TV 뉴스를 보고 있는데 엄청나더라. 땅속에 그 많은 통신시설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도 놀랍고, 거기서 불이 났다는 것도 이해가 안된다.』

『그런 시설이 서울 시내 도로 아래 거미줄처럼 깔려 있어요. 오늘 불이 붙은 것은 통신케이블인데, 그 피복재가 가연성이기 때문에 불이 붙었고, 아주 고약한 유독성 연기가 났어요.』

『불이 나면 전국의 전화가 다 고장이 나니?』

『아니요. 불이 난 곳을 지나는 전화만 고장이 나요. 불은 꺼졌지만 지금도 부근 전화는 계속 불통일 거예요. 혜경의 전화도 그 때문에 고장일 거예요.』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아니?』

『누나,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이 통신에 관한 소설이에요. 내 소설에서도 맨홀에 화재가 발생해요. 그래서 자료를 많이 파악했어요.』

『그러냐? 어쨌든 엄마와 아버지는 이곳에 잘 계시니까 걱정 말고 글이나 잘 써라. 바로 마감이잖니?』

『알았어요. 내일 일찍 들를게요.』

승민은 전화를 끊고 맨홀화재 소식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TV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맨홀 속에서는 불꽃이 타올랐고, 빨갛게 몰려든 소방차들의 모습과 맨홀 속으로 물을 쏟아붓는 모습이 비쳤다.

맨홀.

승민은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그새 화면보호 상태로 되어 있었다. 임의 키. 아무 키나 눌러도 화면보호 기능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승민은 늘 자신이 누르는 키의 명령이 입력될 것 같은 걱정 때문에 Esc키만 누른곤 했다.

Esc키를 누르자 화면이 살아나고 빼곡하게 쓰여져 있는 원고가 나타났다.

승민은 컴퓨터의 Ctrl키와 Pg Dn키를 동시에 눌렀다.

글의 맨 마지막 부분이 화면으로 열렸다.

「침투」 글의 소제목이 침투로 되어 있었다. 승민은 그 부분에서 진도를 잃은 채 마음고생만 하고 있던 중이었다.

TV화면에서는 계속 맨홀화재 소식이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