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에 따른 대기업 및 창업투자사들의 영화분야에 대한 투자중단, 잇따른 영화흥행 실패, 경쟁영화사의 부도 등으로 말미암아 중소 영화제작사에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대기업 자본의 투자중단에 따라 지난 1,2년 사이 국내시장 규모에 비해 과도하게 상승한 영화제작비(평균 15억원대) 부담이 중소영화사의 존립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최근 중소 영화사인 선익필름(대표 임충렬)과 아브라삭스(대표 김현택)가 잇따라 도산하면서 구체화하고 있다.
영화 「나에게 오라」 「불새」 「마리아와 여인숙」 등을 제작한 선익필름은 계속된 흥행실패의 부담을 수습하지 못하고 회사까지 쓰러졌다.
올 추석시즌에 맞춰 개봉한 선우 완 감독의 「마리아와 여인숙」이 결정타였다. 전작인 「불새」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대기업 자본이 선익필름의 차기영화에 대한 투자를 외면하자 선익은 약 13억원에 이르는 「마리아와 여인숙」의 제작비를 자체조달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러나 영화는 서울지역 관객동원수가 5만명에 머무는 등 흥행에 실패, 회사를 부도로 내몰았다. 아직 5억5천만원 상당의 비디오 판권료가 수익으로 정산되지 않은 상태지만 회사를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이다.
아브라삭스의 부도는 더욱 심한 경우다. 지난 8월 15일 개봉한 김태규 감독의 「마지막 방위」가 창립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이 된 것이다. 「마지막 방위」에는 약 12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됐으나 개봉후 서울지역 관객동원수가 4만명에도 미치지 못해 결국 5억원의 적자를 냈다. 현재 SKC를 통해 비디오가 출시되고 있지만 적자를 보전하고 회사를 재건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렇듯 영화 1편의 흥행여부에 회사의 존폐가 결정되는 것은 비단 두 영화사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영화 제작계 전체의 현실이다. 통상적인 한국영화의 흥행성공도가 2할대인 점을 감안할 때 중소영화사들은 그야말로 도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속칭 「대박(대대적인 흥행작)」을 기대하며 그 수익을 기반으로 다음 작품을 기획하는 식의 비정상적인 구조인 것이다.
실제 국내 중소 영화사들 중에는 회사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경상비조차 감당할 능력이 없는 곳이 많다. 안정적인 자본 없이 영화 1편에 모든 것을 걸기 때문에 2억∼5억원대의 적자에도 회사의 존립이 위협받는다.
최근 몇몇 중소 영화사들은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제작비 절감에 나서고 있다. 영화촬영 단계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낭비를 줄여 제작비를 현실화하겠다는 뜻이다. 저예산영화도 일반화하는 추세다.
그러나 제작비가 줄어들수록 영화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소위 「스케일 큰 국제형 영화」가 탄생하기 힘든 것이다. 인구 4천만명을 잠재수요로 하는 한국영화시장의 한계를 감안할 때 제작비 절감과 저예산영화를 추구하는 것은 영화의 위험부담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한국영화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게 한다.
<이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