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국내 정보통신업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한, 미 통신협상이 타결된 이후 한동안 잊혀졌던 「슈퍼301」 태풍이 이번에는 자동차업계를 강타했다.
한차례 홍역을 치른 전자업계야 이번 사태에 한발 비켜서 있지만 슈퍼301을 앞세운 미국의 무차별 통상공세는 특정분야를 가리지 않고 진행돼 이번 자동차업계의 일을 「강건너 불구경」할 것이 아니라 「꺼진 불도 다시 본다」는 심정으로 예의 주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한, 미 양국이 1년여의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최종 타결한 통신협상 결과를 두고 한국정부와 미국정부는 서로 상반된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한국정부는 협상 종결후 「한국은 미 통신무역법 제1377조에 의거한 연례점검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미국의 경우 한국정부의 입장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다.
바셰프스키 통상대표부(USTR) 대표는 『미국은 향후 미 무역법과 WTO 규정에 의거, 한국의 약속이행 여부를 면밀히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협상이 일단락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문제가 생기면 언제라도 재협상에 나서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일부에서 「굴욕적 협상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될 만큼 우리 정부가 미국의 힘의 논리에 일방적(?)으로 밀린 한, 미 통신협상의 결과도 따지고 보면 슈퍼301이라는 미국의 위협구에 손을 들어버린 것이라는 분석이 절대적이다.
미국의 국내법에 불과한 슈퍼301조는 이번 자동차 사태에서 보듯 여타 국가에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는 공포의 대상이다. 슈퍼301조는 미국 통상에 부담을 지우는 외국정부의 차별적이고 불공정하며 비합리적인 관행에 대해 USTR로 하여금 일방적인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문제는 외국정부의 불공정한 무역관행을 판정하는 잣대가 미국정부의 일방적인 기준에 의존하고 있고 보복조치 역시 일방통행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일단 슈퍼301조가 발동되고 보복에 들어가면 해당국의 품목은 미국 수출이 사실상 봉쇄된다.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시장을 잃는 것은 결국 해당국가 해당산업의 몰락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미국 이외의 국가에는 「공포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단 이 덫에 걸려들면 법논리, 국제관행, WTO체제와 합치 여부 등 이론적 객관적 싸움은 뒤로 밀려난다. 미국과의 힘겨루기를 통해 대부분 미국의 의도가 관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한, 미 통신협상 내용을 들여다 보면 한국은 정보기술품목에 대한 관세를 오는 2000년까지, 부가품목에 대한 관세를 2004년까지 철폐하고 내년 1월 1일부터 통신서비스회사의 외국인 소유제한을 완화하기로 했다.
미국으로서는 96년부터 오는 2000년까지 총 1천억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한국 통신시장에서 미국 통신장비 및 서비스업계의 시장접근이 가능해졌다.
한마디로 USTR가 주장한 한국의 정보통신 분야 관세철폐와 시장접근 개선, 경쟁촉진 및 투명성 보장 등 조치가 거의 관철됐다.
전문가들은 슈퍼301에 대항할 수 있는 논리를 서둘러 개발하고 WTO에 제소하는 등 공세적인 방어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국내법인 슈퍼301이 WTO체제와는 걸맞지 않은 법논리와 체계를 갖고 있다는 약점을 겨냥한 것이다.
또 한번 수세에 몰릴 경우 끝까지 밀릴 수밖에 없는 미국과의 협상에서는 당당하고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정부 조직과 통상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
하지만 「법보다는 주먹이 가까운」 정글의 법칙이 철저히 적용되는 것이 국제 무역전쟁의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소 잃고 외양간마저 고치지 않는 안이한 태도로 지내왔던 정부와 업계는 미국의 공세에 항시적으로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전자업계 역시 여기서 예외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미국은 이미 팍스아메리카나 사조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