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영화의 마케팅기법이 발전하면서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의한 영화제작이 주류로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영화계는 기획단계에서 사전 시장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반영하는 사례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최근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는 시장환경이 조성되면서 영화내용를 소비자의 욕구에 맞추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경향은 시나리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시나리오 창작이 작가 개인의 문학적 역량에 맡겨지지 않고 영화기획제작진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작업으로 변하고 있다.
오리지널 시나리오 중흥의 물꼬를 튼 영화는 김의석 감독의 「결혼이야기」(92년, 각본 박헌수)다. 이 영화는 신세대 및 X세대가 발흥하기 시작한 당시의 대중문화현상을 치밀하게 분석,심혜진과 최민수라는 인기스타를 전면에 내세우고 트랜디드라마류의 이야기로 시나리오 무게를 가볍게 한 결과 52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성공을 거뒀다.
이후 대중의 욕구와 감성에 소구하는 영화의 흥행성공이 이어지면서 오리지널 시나리오의 성가도 높아졌다. 특히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94년, 각본 김성홍)가 86만명의 관객을 동원,근래에 보기드문 성공을 거두자 오리지널 시나리오 영화제작 붐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했다. 강우석 감독의 차기작 「마누라 죽이기」(94년, 각본 김상진 외 다수)의 경우에는 시나리오 공동창작을 실현했다.
올해 개봉해 흥행에도 성공한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송능한 감독의 「넘버3」,장윤현 감독의 「접속」은 아예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고 영화기획제작진과의 협의하에 수정작업을 거듭하기도 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각색 시나리오 영화의 흥행실패가 이어지면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 94년 이후 최근까지 개봉됐던 영화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나는 소망한다,내게 금지된 것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영원한 제국」 「인샬라」 등은 원작소설의 성공에 비해 흥행이 저조했던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그동안 국내 영화계는 각색 시나리오 영화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여왔는데 이는 「원작소설 독자들의 기대심리가 흥행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근대적인 마케팅기법(기대심리)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국영화계에 이같은 기대심리를 심어놓은 영화는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74년, 원작 최인호). 이 영화가 TV보급으로 영화시장이 극도의 침체에 빠져있던 70년대 초에 46만명이라는 기록적인 관객을 동원하자 「원작소설에 기대어 영화만들기」가 만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들어서는 허영만의 장편만화를 각색해 흥행에 성공한 김성수 감독의 「비트」 이외에는 각색 시나리오 영화가 제작되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물론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93년, 원작 이청준),「장군의 아들」(90년, 원작 홍성유)와 같은 영화가 각각 1백만,67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오리지널 시나리오 선호현상을 역류시킬 만큼의 효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