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계의 「흥행작 따라하기」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따라하기」는 장르,배우 캐스팅,제작방식 등 영화제작 전반에 걸쳐 복합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독창적인 기획없이 흥행작과 비슷하게 만드는데 치중하다보니 경쟁력 위축은 물론 관객들의 외면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2,3년간 한국영화의 장르 동향을 살펴볼 때 「웃음」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제작비 동원능력이 취약한 한국영화계에서 코미디영화가 최소 제작비로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장르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이후 코미디영화가 스타급 배우와 연계되면서 흥행보증수표로 떠올랐고 「코미디영화=박중훈」이라는 공식까지 등장했다.
박중훈은 「투캅스」시리즈,「마누라 죽이기」,「총잡이」,「꼬리치는 남자」,「돈을 갖고 튀어라」,「할렐루야」,「현상수배」등을 통해 코미디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힌데 이어 현재 「인연」(율가필름),「북경반점」(영화세상)이라는 코미디를 준비하는 등 영화가 박중훈류의 분위기에 따라오도록 만들 정도다. 관객들은 영화내용보다는 박중훈식의 웃음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몰렸을 뿐인데 일부 영화인들은 이를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배양된 것』으로 오인했다.
그 오해는 올해 여름시장에 잇따라 개봉됐던 「할렐루야」(태원엔터테인먼트)와 「현상수배」(씨네2000)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할렐루야」는 서울관객 30만명에 육박하는 성공을 거뒀으나 「현상수배」는 참패했다. 두 영화가 웃음에 치중한데다 배우마저 같아 관객들의 식상을 불러온 결과였다.
이같은 조류는 또하나의 흥행보증수표로 자리잡은 한석규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낳을 조짐이다. 한석규의 이미지에 맞춘 사랑이야기가 가을이라는 계절과 맞물리면서 웃음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한석규는 현재 전국관객 1백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접속」(명필름)을 통해 사랑영화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실제 한석규를 따라다니며 영화를 선택하는 매니아관객들이 출현한 가운데 그의 후속작 「8월의 크리스마스」(우노필름)에도 관객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다수의 영화사들도 사랑영화 따라하기를 본격화,「인연」(율가필름), 「연애편지」(돼지필름), 「편지」(신시네), 「조용한 가족」(명필름)등이 늦가을과 겨울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영화업계의 한 관계자는 『관객이 원하는 이야기와 배우를 선택하는 것은 영화마케팅의 기본』이라며 『편중된 장르와 배우캐스팅은 그저 유행일 뿐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상업적 성공을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현실이 있다. 영화 한 편에 목숨을 건 영화사로서는 대기업으로부터 제작비를 끌어들여야만 하는데,영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대기업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눈에 띄는 흥행작의 장르와 배우를 따라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투자=수익」이라는 제조업 마인드에 영화를 맞추다보니 자유로운 영화적 사고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는게 영화인들의 지적이다.
<이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