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견 영화사가 제작한 기대작 3편이 잇따라 초반 관객동원에 실패하는 등 우리영화의 흥행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제이콤의 「억수탕」, 아시아네트워크의 「야생동물 보호구역」, 우노필름의 「모텔선인장」 등 촬영단계에서 화제를 불러있으켰던 3편의 우리영화가 개봉 첫주말 서울시내 간판극장에서 1천명 내외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지난달 18일 개봉한 「억수탕(곽경택 감독)」의 경우 제이콤측이 창립영화였던 「인샬라」와 「바리케이드」의 흥행실패를 만회할 만한 재기작으로 전국 15만 이상의 관객동원을 기대했으나 예상밖으로 고전, 이달 7일 종영까지 전국 5만을 넘기기도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이 시사회 직후 PC통신 영화동호회 게시판에 열광적인 지지를 나타낸 영화평들이 답지했던 것을 감안할 때 이같은 흥행성적은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의 영예를 차지했던 「모텔선인장(박기홍 감독)」의 경우도 지난 25일 개봉후 메인극장인 서울극장과 대한극장에서 첫주말 관객 1천8백여명을 입장시키는 데 그쳤다. 이 작품은 「중경삼림」의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의 참여로 마니아들의 시선을 집중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영화를 보고난 관객들의 반응은 「실망스럽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분위기다.
같은 날 서울 명보극장을 비롯, 7개관에서 관객과 만났던 「야생동물 보호구역(김기덕 감독)」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 작품 역시 계약기간인 3주간은 상영이 보장된 상태지만 5만 관객동원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처럼 우리영화 기대작들이 잇따라 관객의 외면을 받고 있는 데 대해 『2주일 사이에 18편의 신작영화가 선보이는 등 극장가에서 출혈경쟁이 벌어졌으며 한맥엔터테인먼트가 수입한 외화 「지 아이 제인」에 주말관객 6만이 몰리면서 상대적으로 나머지 영화들이 열세에 놓이게 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10∼11월은 거의 매주 영화상영표가 바뀔 정도로 개봉작이 쏟아지는 기간이다. 여름방학과 크리스마스 대목이면 어김없이 극장가를 독식하는 할리우드 대작영화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는 충무로 제작자들의 기대와 우리영화 의무상영일수인 스크린쿼터를 채우려는 극장주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데다 개봉작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비디오판권 가격을 높이려는 영화수입사의 계산까지 합쳐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의 경우 복병인 할리우드 영화 「지 아이 제인」이 대대적인 홍보공세와 함께 관객을 쓸어가면서 이같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게다가 월드컵 축구열기에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까지 겹쳐 온국민이 스포츠열풍에 휩싸여 전반적으로 영화관객이 줄어든 것도 흥행의 변수가 됐다. 또한 영화의 타깃 관객층에 따라 마케팅을 차별화하지 못했다는 점도 실패요인의 하나로 손꼽힌다. 예를 들어 「모텔선인장」의 경우 20대 후반부터 30대 주부들이 쉽게 공감할 만한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광고는 10∼20대 남성들이 주요 독자층인 스포츠신문에 집중된 반면 여성지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야생동물 보호구역」관련 홍보업체가 도심 한복판에서 진행했던 보디페인팅쇼 역시 행인들의 관심을 끌기는 했으나 해외 올로케 화제작의 무게에 비하면 가벼운 1회성 해프닝에 그쳤다.
앞으로 시네마서비스의 스릴러 「올가미」, 현대방송의 두번째 영화 「깊은 슬픔」, 방송사 최초의 극장용장편인 MBC의 「꽃을 든 남자」, 「접속」 이후 멜로물 붐을 탈 것으로 기대되는 「편지」 등이 제작을 완료했거나 후반작업을 앞두고 있으나 최근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당분간 우리영화 흥행작이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게 충무로 관계자들의 우려섞인 전망이다.
<이선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