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힘 앞에서 그토록 믿었던 문명이 무력해지는 것을 그동안 어렵지 않게 보아왔다. 특히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거나 혹은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기기들로 인한 간접 훼손이 인간에게 피해로 되돌아오는 사례들은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공장이나 연구실의 내부를 「잠실 주경기장에 모래 한알」 정도의 먼지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한 청정환경(클린룸)을 실현했다고 자랑해 왔던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재해로 해당 지역뿐만 아니라 그 영향권 안에 있는 인근지역의 반도체 등 첨단산업들이 크게 고통받고 있다. 이들 공장들도 그동안 나름대로 완벽한 청정시설을 갖췄다고 자부했으나 대규모 산불은 이같은 믿음이 얼마나 허구적이었던 것인가를 극명하게 깨닫게 했다. 이들이 갖추고 있던 청정시설은 「미케니컬 파티클」이라고 불리는 분진 등을 걸러내는 데는 나무랄 데 없었으나 산불로 인해 공기중에 만연한 「화학물질」까지 막아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말레이시아 등 산불 발생 지역 인근에 있는 공장들은 그다지 높은 정밀도를 요하지 않는 것들에 주력하고 있어 피해가 그다지 크지는 않았지만 만약 이들 지역에 초고집적 반도체 일관가공라인 등이 있었다면 문제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이같은 대형 산불 같은 재해의 위험성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결코 안심할 형편은 아닌것 같다. 특히 자동차의 급속한 증가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매연 등 공해는 벌써부터 우리 청정환경을 요하는 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들이 들린다.
고속도로 인근에 위치한 한 반도체 유관업체는 최근 겨울철에 생산된 제품의 불량률이 높거나 특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에 주목, 유관업체와 공동조사를 벌인 결과 이 시즌에 바람의 방향이 고속도로에서 공장 쪽으로 바뀐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를 토대로 공기중의 화학물질의 양이 크게 늘어나 제품에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실제로 화학물질을 걸러낼 수 있도록 청정설비를 보강한 결과 이같은 문제가 크게 해소됐다는 후문이다.
이대로라면 환경이 「선진 외국들의 새로운 통상장벽」이 아니라 우리 산업에 「발등의 불」로 다가올 날도 머지않았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