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경쟁시대의 기업 공조

金在一 아님전자 전무

지난달 전자산업진흥회가 내놓은 「가전산업 동향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AV산업은 오는 2000년대에 국내 업체들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구조조정이 완료되고 소득수준 향상과 정보사회의 확산,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차세대 AV제품이 시장을 주도하며 가전시장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장미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국내 오디오 산업의 선두주자인 해태전자의 법정관리 신청은 한보, 기아 등 국내 대기업들의 연쇄부도와 맞물려 한국경제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국내 경기의 극심한 침체 속에서 외국의 유명 브랜드들은 유통업계를 시작으로 국내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의류, 음료, 화장품, 악세사리 등의 세계 굴지의 기업들은 일찍이 우리나라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확고히 하고 유통체계를 직영화하면서 한국시장 공략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비단 유통업계뿐 아니라 세계무역기구(WYTO)아래 외국자본으로부터 안전한 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국내 업체만을 경쟁상대로 인식하는 자세를 탈피하여야 한다.

짤막한 우화 하나를 소개한다. 한 병실 안에 중병을 앓고 있는 두 명의 환자가 입원하고 있었다. 그 병실엔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 하나 밖에 없어 한 명은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지만 나머지 환자는 그럴 수 없었다. 그 환자는 창가에 누워 있는 환자가 설명해주는 창밖의 모습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창가의 환자는 창밖에 멋진 호수공원이 있고 단란한 가족들이 단풍든 은행나무 사이를 정답게 거닐고 있더라, 하얀 눈이 쌓여 아이들이 귀엽게 뛰어놀더라는 등 맞은편 환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말들을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쪽에 있던 환자가 창가에 있던 환자를 질투하게 됐다. 왜 그 사람 혼자만 바깥풍경을 보는 즐거움을 차지하고 있는지가 불만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창가에 앉아있던 환자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는데 맞은편 환자는 간호사를 부르지 않고 그 환자가 죽도록 내버려뒀다. 결국 그 환자는 숨을 거두고 맞은편 환자가 창가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창가로 자리를 옮긴 그 환자는 큰 기대를 갖고 창밖을 본 순간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밖은 그 환자가 이야기해 준 대로 잘 정돈된 호수공원도, 단풍든 나무도, 흰 눈이 쌓일 공간도 없는 너무나 삭막한 회색건물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경기침체라는 병을 앓으며 하나의 병실에 누워 있다. 경기침체라는 중병을 앓으면서도 우리 기업 현실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병을 고치기보다는 경쟁자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자신의 욕심만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원칙이 지배하는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우리는 서로 경쟁상대일 수밖에 없지만 정정당당하지 못한 경쟁은 나에게도 크나큰 상처를 입히고 말 것이다.

상대의 장점을 존경하고 배우며 서로의 위치를 존중해줄 때 경기침체라는 중병을 이겨낼 수 있으며 무차별적으로 공습을 가해오는 외국자본에 대항해 맞설 수 있는 강한 연합군을 형성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