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전환기 맞은 PCB산업 (3);뿌리부터 흔들린다

PCB는 20여개의 주요 공정과 전기, 전자, 화학, 기계, 금속 등 여러기술이 복합적으로 응용되고 있어 제조가 매우 까다로운 품목이다.

이 때문에 PCB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인프라스트럭처(하부구조)에 해당하는 후방산업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고밀도, 초박판, 다층화로 요약되는 MLB의 급부상으로 원판, 동박, 케미컬류 등 핵심소재를 비롯한 후방산업의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특히 BGA(Ball Grid Array), TAB(Tape Automated Bonding), MCM(Multi-Chip Module) 등 차세대 반도체 패키지용 PCB처럼 전적으로 몇몇 핵심소재에 좌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국내 PCB산업은 관련 세트나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에 비하면 하부구조가 매우 취약한 역삼각형의 불안한 산업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핵심소재류의 수입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국산 PCB의 국제경쟁력도 자연히 약화되고 있다.

PCB산업의 하부구조를 분야별로 살펴보면 이같은 구조적인 취약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우선 핵심소재인 원판의 경우 단면PCB용 페놀원판은 공급이 수요의 2배를 넘는 공급과잉이 지속되고 있는 반면, MLB용 소재는 수입의존도가 계속 높아지는 등 부문별로 수급 편중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최근 반도체 패키지 및 이동통신 단말기 생산확대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고밀도, 박판 PCB용으로 채용되는 0.2T 이하의 초박판 틴코어라미네이트를 비롯, 테프론원판, BGA기판용 BT원판 등 차세대 제품은 국내수요의 전량을 일본, 미국 등에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박의 경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단면PCB용 동박(ACF)은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진소재, 태양금속 등 국내업체들이 생산량을 줄여 전반적으로 공급이 달리고 있으며, 초박판 MLB용 동박은 기술력과 품질이 떨어져 대부분 니코골드 등 일본산에 밀리고 있다.

케미컬부문의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 다수의 화학공정을 수반하는 업종특성상 PCB는 수십종의 케미컬 제품들을 사용하는데 현재 태평양그룹과 일본다이요와의 합작사인 한국태양잉크가 주로 공급하는 UV 및 PSR잉크를 제외하고는 거의 외산 일색이다.

핵심소재와 함께 PCB산업의 하부구조를 지탱하는 대표적인 분야가 관련 제조장비. 전공정과 후공정을 합쳐 PCB제조에 사용되는 장비류는 계측기까지 포함할 경우 어림잡아도 1백종을 넘는다. 그러나 현재 웨트프로세서, 노광기, 라미네이팅기, 스크린인쇄기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곤 일본, 미국, 유럽산을 쓰고 있다.

최근엔 주요 경쟁국인 대만산 장비수입도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장비수입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대기업들까지 PCB장비수입에 앞장서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장비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부나 관련단체, 수요자인 PCB업체들의 의지는 실종된 지 오래다.

전문인력이 크게 부족한 것도 PCB산업의 뿌리를 약화시키는 대목. 제조기술의 급진전과 첨단제품의 잇단 출현으로 PCB업계의 고급 엔지니어 수요는 급증하고 있으나 공급은 고작 70∼80%선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기존 인력들은 잦은 이직과 퇴사-창업의 악순환을 거듭, 인력난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뿌리가 약하면 열매가 잘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먼저 눈을 돌려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