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泰希 연구개발정보센터 선임연구원
「소프트과학」이라는 이름의 연구가 최근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아직 생소한 소프트과학이라는 용어는 사람이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프트과학은 연구대상 분야가 21세기 초에 상품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신경망 컴퓨터 등 차세대 제품개발에 필수적인 심리학, 언어학, 전산학 등을 포괄하고 있다. 소프트과학의 뿌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오래됐다.
사람을 닮은 기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20세기 들어서면서 사이버네틱스라는 새로운 학문분야를 탄생시켰고 이것은 또 2차대전을 전후해 인공지능이라는 학문 형태로 발전했다. 또 80년대부터는 신경망기술을 이용해 학습하는 기계를 개발하는 연구가 선보였고, 급기야 인공생명이라는 학문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최근 이들 분야 연구는 인문과학과 자연과학 등 학문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람을 닮은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의 마음부터 이해해야 한다. 물론 기존의 과학연구에도 사람의 마음문제를 다루는 분야들이 여럿 있다. 즉 철학에서는 인식론, 존재론 등이 있고 심리학의 인지심리, 생리학, 언어학, 생태학 등도 마음의 연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심지어 물리학에서도 마음의 현상을 물리현상의 하나로 여겨 지대한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소프트과학에 대한 연구범위는 이렇게 여러 학문분야에 걸쳐져 있다. 다시말해 인지과학, 감성공학, 그리고 인공지능 등도 모두 이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하겠다.
여기에다 컴퓨터의 등장은 마음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 「사람이 하는 일을 컴퓨터에게 시킬 수 있을까」에서부터 「지능이란 무엇일까」 「컴퓨터가 사람이 하는 일과 똑같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사람과 기계는 어떻게 다를까」 등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기계를 통해 인간이 새로운 각도로 비춰지게 된 것이다.
기존의 딱딱한 과학(하드 사이언스)이 분석적 접근방식에 주로 의존한다면 부드러운 과학(소프트 사이언스)은 종합적 접근방식에 주로 의존한다. 서양의 철학이 분석적이라면 동양의 철학은 종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이 서로 앞다투어 소프트과학 연구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서양의 학자들이 최근 소프트과학 연구를 본격화하기 위해 동양철학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는 현상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에서도 그동안 이처럼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던 여러 분야 연구집단들이 소프트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한 군데에 모였다. 과학기술처가 이 분야를 국가 연구과제로 채택,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소프트과학은 기존의 정형논리의 틀을 뛰어넘어 그동안 하드 사이언스가 간과해온 지극히 인간적인 문제에 대해 탐구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이처럼 다양한 학문분야간 교류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아무쪼록 이러한 연구활동을 통해 우리가 인간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인간 중심의 기계를 개발, 궁극적으로는 인간 중심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