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PCB는 핵심 부품임에도 불구하고 세트개발을 주도하지 못하고 세트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수동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이는 PCB업체가 기술에 대한 자신감과 독자적인 마케팅력이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트업체들의 기본적인 설계능력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은 조만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PCB기술이 세트기술을 선도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차세대 다층기판(MLB) 제조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빌드업(Build-Up)프로세스가 차세대 PCB 플랫폼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빌드업기술은 글자그대로 PCB를 한층한층씩 쌓아 올려 다층을 형성하는 새로운 개념의 프로세스. 내층과 외층을 따로 가공, 프레스로 눌러 제조하는 기존 공법과 달리 빌드업은 마치 단면PCB를 제조, 차례차례 겹쳐놓듯 가공하기 때문에 PCB밀도를 높일 수 있고 초박판화에 유리하다.
빌드업은 또 한층씩 제조, 품질을 평가함으로써 전체적인 MLB수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반면 기존 공법은 다층화로 갈수록 불량에 따른 수율저하가 크다. 따라서 빌드업PCB는 기존 다층기판보다 고밀도, 박판화가 가능하면서 최종 제조원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첨단 제조공법으로 간주되고 있다.
문제는 초기 투자 비용. 핵심 장비인 레이저드릴만해도 무려 대당 1백만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빌드업PCB 양산라인을 갖추는 데는 막대한 시설비가 투입된다. 그동안 빌드업PCB가 차세대 MLB로 각광받으면서도 상용화가 다소 늦어졌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문제도 쉽게 해결될 전망이다. 최근 빌드업 대신 기존 라인에서 고밀도박판PCB 제조가 가능한 IVH(Interstitial Via Hole)기술이 국내서도 상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막대한 초기 투자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빌드업PCB시장이 급신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빌드업PCB의 주 시장은 디지털휴대폰, PCS, 디지털캠코더 등 초소형 이동통신단말기다. 그러나 경박단소화가 전자기기의 큰 흐름이란 점을 감안할 때 채용 부품의 고집적도를 위한 PCB의 고밀도화가 요구돼 빌드업시장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세계적으로도 빌드업프로세스는 10여개 종류가 등장, 빌드업시대를 입증하고 있다. 히타치, JVC, CMK, 이비덴, 마쓰시타, 소니, NEC(이상 일본), 모토롤러, IBM(이상 미국), 우스(대만), 지멘스(독일), 삼성(한국) 등 내로라하는 업체들이 빌드업PCB를 양산하고 있으며 다이쇼, 대덕전자, 해드코 등 많은 업체들이 양산을 준비중이다. 이처럼 고밀도, 박판 PCB를 보다 값싸게 만들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빌드업프로세스는 PCB기술에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우선 레이저, 플라즈마, 포토비아 등 차세대 광원을 응용, 금세기엔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0.1Φ(㎜)이하의 초소형 홀과 극초 미세회로형성과 박판화를 실현, 반도체를 닮은 PCB 출현을 앞당기고 있다.
PCB나 세트시장 자체의 변화도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고부가 이동통신기기용 PCB시장의 대세로 정착됐던 IVH기판을 대체, 빌드업PCB시장은 급부상하며 전체적인 MLB시장 확대의 견인차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되며 세트의 초소형화도 더욱 활기를 띨 전망이다.
PCB전문가들은 『이제까지는 범용화된 기술로 누가 남보다 빨리 값싸게 만드느냐가 PCB업체의 열쇠였다면 앞으로는 기술력이 업계의 위상을 좌우함으로써 PCB산업고도화가 빠르게 진전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중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