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벤처기업이 뛰고 있다 (30);하나기술

「마흔하나의 나이에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7년 된 소프트웨어 회사를 경영하는 남자.」

정보통신부가 국내 벤처기업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정보통신업체 가운데 1백91개의 유망 벤처기업을 선정, 창업자 약력을 조사한 결과 나타난 평균치로 가장 전형적인 우리나라 벤처기업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공한 벤처기업인 하면 으레 박사 출신의 20대 내지는 30대 초반의 엔지니어를 연상하게 되지만 사실 「잘 나가는」 벤처기업인 중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마리텔레콤 장인경 사장, 노바시스템 김지희 사장, 삼경정보통신 김혜정 사장은 여성이며 특히 김혜정 사장과 김지희 사장은 업종과는 전혀 상관없는 유아교육과 미술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래산업 정문술 사장과 인트라넷 소프트웨어 업체인 정한컴퓨터의 허창용 사장은 고졸임에도 대학교수 이상의 전문지식을 지니고 심지어 대학교수들로부터도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나이 40, 고려대 물리학과 졸업, 고체물리학으로 석사학위 취득, 92년 회사설립, 업종은 자본재산업인 레이저 가공기.」

레이저 가공기분야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하나기술 김도열 사장은 국내 전형적인 벤처기업인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그러나 그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과 기술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어느 벤처기업 이상이다.

레이저 가공기란 복잡한 공구가 없어도 목재, 아크릴, 석영유리를 비롯, 금속, 신소재, 세라믹에 이르기까지 재질에 관계없이 자유자재로 절단 및 가공할 수 있는 최첨단 장비로 세계적으로도 10여개 나라만이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레이저 가공기를 산업에 응용할 경우 가공의 정밀도는 물론 원가절감에 획기적인 전기를 이룰 수 있어 국가산업 경쟁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메카트로닉스, 항공우주산업 등 고품질 부품이 필요한 첨단산업의 경우 레이저 가공기를 통한 부품가공은 필수적이다.

물리학을 전공한 김 사장이 레이저 가공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대학원 재학중이던 지난 83년, 20대 신참 연구원 5명으로 구성된 LG전선연구소 레이저연구팀장을 맡으면서부터다.

레이저에 관한 한 기초이론밖에 몰랐던 김 사장은 연구원들과 국내외 서적과 논문을 죄다 뒤지고 대학과 연구소를 숱하게 돌며 독자개발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이듬해 1백W급 산업용 레이저 발진기 개발에 본격 착수하게 된다.

당시 국내에서 제작할 수 있는 레이저 발진기가 10W 미만의 실험용이 고작이었기 때문에 김 사장의 개발 착수를 두고 주변에서조차 「성공 가능성이 없는 무모한 일」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이같은 비아냥에 아랑곳 않고 연구개발에 몰두한 김 사장은 갖은 시행착오 끝에 85년 8월 국내 최초로 안정된 출력의 1백W급 레이저 발진기 개발에 성공하게 된다. 이 일로 상공부장관상, 석탑산업훈장 등 많은 상을 받음은 물론 언론에서도 대서특필하는 등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후 김 사장은 세라믹 가공용 CO₂ 레이저 가공기, 섬유절단용 CO₂ 레이저 가공기, 태양전지 스크라이빙 Nd;YAG 레이저 가공기, 담배필터 종이 레이저 천공기, 공장자동화(FA) 타입 1.5㎾ CO₂ 레이저 발진기, 금속박판 레이저 절단기 등을 연이어 개발하는 등 국내 레이저 가공기분야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84년 석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85년 입학한 박사학위 과정을 중도포기하면서까지 레이저 가공기 개발에 몰두한 결과였다.

그러나 김 사장은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와는 달리 사업화에는 소극적이던 LG를 떠나기로 마음먹고 92년 9월 동료 연구원들을 이끌고 퇴사, 지금의 하나기술을 설립하게 된다.

10년간 레이저로 한 우물만을 파온 김 사장과 하나기술은 창업 6개월 만인 93년 초고주파 전자소자 레이저 스폿 용접기술을 개발한 데 이어 94년에는 다이아몬드 휠 레이저 용접가공기와 전자부품 삼점 동시용접 레이저 시스템 등을 개발했다.

95년에는 고출력 레이저 열처리시스템, 레이저를 이용한 마이크로 식각기술, 자동차 부품 레이저 용접시스템 등을 개발했고 96년에는 G7 프로젝트 중 하나인 「레이저빔 응용 가공기술 개발사업」(99년 완료)과 공업기반기술 과제인 「LCD 레이저 리페어링기술 개발사업」(98년 완료)에 착수하는 한편 마이크로 칩 콘덴서 스폿 용접기를 개발, 시판하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두 선진업체 제품에 비해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 품질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것. 10여년간 레이저 가공기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LG전선의 노력이 엉뚱한 곳에서 빛을 보게 된 셈이다.

올해 들어서만도 하나기술은 고출력(3㎾) Nd;YAG 레이저와 로봇을 결합한 자동차 및 기계산업용 레이저 용접 및 절단기를 국내 최초로 개발, 이 달 중 한국산업기술연구소에 설치할 예정이며 최근에는 미국, 일본 등 세계적인 업체들과 경합끝에 10시간 동안 무려 1만8천개의 미세한 홀을 천공하는 고정밀 레이저 천공기를 (주)금강으로부터 수주하기도 했다.

특히 차세대 장비로 알려진 레이저 텍스처링(Texturing)기의 개발에 착수하는 한편 대우자동차와 자동차 차체 용접용 레이저 용접기의 기술지원 계약을 체결하는 등 대내외에 기술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같은 성과와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극심한 경기침체로 인해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급격히 감소한 상황에서도 지난해보다 오히려 매출액이 증가한 20억원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이 회사측은 전망하고 있다.

특히 점차 설비투자가 회복되기 시작할 것으로 보이는 내년에는 35억원에 이어 99년 60억원, 2000년 1백20억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할 방침이다.

정보통신이나 소프트웨어 업종의 경우 워낙 기술발전 속도가 빨라 연구개발을 게을리하거나 제품 출하시기를 놓치면 오늘 1등이던 기업이 내일 3등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아이디어만 좋으면 올해 10억원의 매출을 올린 기업이 내년 1백억원의 매출도 거뜬히 올릴 수 있다.

통상 자본재산업은 각종 기술의 총 집합체로 시장에 진입하기엔 힘들어도 한 번 진입에 성공했다면 어느 업종보다 안정적인 수요가 따르며 급격한 성공이나 실패가 없는 매우 보수적인 시장으로 분류되고 있다.

내년에 역점을 둘 사업은 자동차, PCB, 전자, 기계산업 등 특화된 시장 및 기존 로봇이나 프레스 및 공작기계 등의 영역을 대체할 수 있는 업종을 중점 공략하는 것이고 CO₂레이저 용접기와 레이저 천공기 및 절단기를 중심으로 수출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또 99년까지 국내에서 기반을 구축한 후 2000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외 기반을 다지는 기간으로 삼아 기계 및 전자산업용 레이저 가공기 수출에 주력하고 코스닥에도 등록할 예정이다.

2006년 이후에는 레이저 가공기분야의 세계 초우량기업으로 안정된 성장기에 접어들기 위해 연내에 연구소도 설립할 예정이다. 평소 연구가 곧 생산이고 생산이 곧 연구여야 할 벤처기업은 연구소를 따로 설립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던 김 사장이 연구소 설립을 서두르는 것은 정부지원 과제의 주관기관이 될 수 있고 병역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등 사업상 유리한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이 회사는 연구소 없이도 회사 설립 이후 총 매출액의 30% 이상을 R&D에 투자해 왔으며 16명의 직원 중 14명이 연구 및 기술직일 정도로 연구개발에 많은 비중을 둬 왔으나 내년부터는 연구소를 중심으로 연구성과를 보다 체계적으로 상품화하는 등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겠다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박효상 기자>

<인터뷰> 하나기술 김도열 사장

『국내 레이저 가공기업체의 공통적인 어려움은 시장규모가 작고 기반기술이 부족하며 우수한 기술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최근에는 제작단가의 상승과 부가가치의 하락으로 경쟁이 심화되는 추세인데 이를 극복하려면 단순히 국산화율 높이기에 급급하기 보다는 부가가치율 향상에 주력해야 하며 부품산업 육성 등 국가 차원의 기술 인프라 구축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하나기술 김도열 사장은 이같은 전제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좁은 내수시장에서의 경쟁을 해외시장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금속절단기와 레이저 마킹기가 주류를 이루는 국내 레이저 가공기 시장규모는 연간 금속절단용이 1백여대, 마킹기가 70∼80대, 저출력 Nd;YAG 레이저 스폿용접이 20∼30대 정도 판매되며 레이저 용접기는 이제 시장이 생성되는 단계입니다.』

김 사장은 초기시장이라 규모예측이 어렵지만 대략 6백억∼7백억원으로 추산하며 내년부터는 급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회사이름인 하나는 「유일하다, 크다, 많다」는 3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레이저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 우선 태양이 프리즘을 통과할 경우 빨주노초파남보의 7가지 색이 나타나지만 레이저는 한 가지 색만 나타내며 레이저빔은 나무, 돌, 금속 등 모든 것을 녹일 수 있을 정도로 에너지가 큽니다. 농담같기는 하지만 제 이름도 레이저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도(道)와 열(熱)을 영어로 표현하자면 「The Way of Heat」 즉, 열의 길이지요. 열의 길이란 바로 레이저 아니겠습니까.』

하나기술이라는 회사이름에는 나름대로 뜻이 있다며 자신과 레이저의 만남을 운명적이라고 말하는 김 사장의 최대 목표는 한국 산업환경에 적합한 한국형 레이저 가공기를 개발, 보급하는 것이다.

김 사장은 이어 국내 레이저 가공기 산업발전을 위해서는 『국산 제품이 외국산보다 세제 및 금융 면에서 불리하고 수입한 부품 중 하자가 있어 외국제작사로부터 부품을 교환할 경우 이중관세가 부과되고 행정절차가 매우 복잡한데 이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며 『가칭 레이저센터같은 국가 차원의 연구기관을 설립해 연구를 보다 체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효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