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19일.
여느 때처럼 아침 6시 30분에 눈을 뜬 대입시군은 부지런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았다. 아직 시험이 시작되려면 1시간이나 남았지만 잠깐이라도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다. 컴퓨터를 켜자마자 예약된 인터넷 사이트가 접속됐다. 주문형 방식으로 매일 아침 전송되는 학습내용으로서 입시 당일인 오늘은 출제 적중률이 높다는 핵심 요점정리를 받아보기로 돼있다.
8시 30분이 되자 영상카메라가 부착된 대입시군의 컴퓨터 화면은 자동으로 입시중앙본부의 홈페이지로 바뀌고 이내 시험감독 교사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나면서 수험생들의 등록방법과 시험중 주의사항을 설명했다.
『수험생들의 움직임은 초고속 통신망을 타고 이곳 시험감독 선생님들의 중앙모니터로 모두 보이니 부정행위는 하지 말 것이며 침착한 마음으로 시험에 응하라.』
시험시작 20분 전을 알리는 안내와 함께 수험생 등록화면이 나타나자 대입시군은 책상 오른켠에 준비된 전자펜을 들어 서명을 하고 영상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 시험감독 선생님이 수험생 본인임을 확인토록 했다.
시험은 화면 아이콘 클릭동작으로 시작됐다. 마우스 클릭 후 시작버튼을 누르자 문제지가 화면에 나타났다. 늘 해오던 연습이지만 대입시군은 마우스와 키보드, 전자펜을 활용, 심혈을 기울여 답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4교시.
감독교사의 마지막 안내가 화면으로 나왔다. 4시 이후부터는 시험을 자유롭게 끝마칠 수 있으며 시험을 마치면 반드시 종료버튼을 눌러 시험끝을 알리라는 고지였다.
대입시군이 모든 문제를 다 검토한 후 시험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한 시간은 오후 4시 30분.
아직 시험종료까지는 10분이 남았지만 대입시군은 시험끝을 알리는 종료아이콘을 누르고 화면에 나타나는 서명란에 전자펜으로 사인을 했다.
『시험은 끝났다.』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한 대입시군은 한순간 안도의 숨을 쉬며 함성을 질렀다. 그러나 아직 안도하기는 이르다. 20분 후면 시험답안이 시험본부 홈페이지로 발표되고 확정결과는 아니지만 자신의 점수와 전국석차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계결과 대입시군은 스스로 대체적으로 만족할 만한 성적을 얻은 것 같다고 예상할 수 있었다.
저녁 9시.
방송뉴스에는 이번 대학입시의 난이도와 전체 학생들의 점수분포도가 그래프로 발표됐다. 아직 공식 발표된 자료는 아니지만 전산처리 집계로는 이번 시험점수가 작년보다 10점은 올랐으며 수리력 문제가 비교적 쉽게 출제된 것이 그 원인이라는 전문가의 해설도 나왔다.
이틀 후.
자신의 시험성적이 당초 예상했던 대로였음을 확인한 대입시군은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지망대학인 우수대학의 접수코드와 입시요강을 확인했다. 전국 석차분포표와 그래프로 미루어 합격은 무난할 것으로 보였다.
4일 후.
우수대학의 원서접수일이 되자 대입시군은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우수대학 정보과에 원서를 접수했다. 우수대학 컴퓨터망에 접속, 전자원서를 접수하고 자신의 생활기록부 및 내신성적 파일을 원서에 첨부했다. 이 파일은 학교에서 제작해준 별도 파일로, 암호키로 압축돼있다.
원서접수를 마치자 3일 후 면접시험을 치르라는 말과 함께 합격을 기원한다는 음성이 화면과 스피커에서 나온다.
아직 합격발표일이 남아있긴 하지만 대입시군이 시험일로부터 대학입학 합격여부를 알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총 1주일.
초등학교 시절, 대학입시 때문에 한달이 넘는 기간을 입시장과 집과 대학을 오가며 기다리고 초조해하던 막내삼촌 생각이 났다. 뿐만이 아니었다. 부산 큰집 사촌형이 서울에서 대학시험을 치르러 집에 묵었던 일, 입시 당일 교통대란을 피하기 위해 아침 5시부터 집을 나서던 일, 저녁 TV뉴스 시간에는 교통난 때문에 시험장에 도착하지 못한 수험생들의 허둥대던 모습이 비치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 대입시군은 교통대란이나 시험장의 혼란이 먼 전설처럼 여겨졌다. T1급에 육박하는 초고속 정보통신망이 가정마다 연결된 지금은 절대거리의 개념도 희박해졌다. 집이나 학교 컴퓨터 앞에 앉아 멀리 있는 사람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지방의 시험에도 응시할 수 있다.
입시중앙본부 측에서도 시험지를 운송하기 위해 전국의 도로가 몸살을 앓고 시험지 유출을 막기 위해 삼엄한 경호까지 갖춰야 했던 일들은 이제 모두 해결됐다.
시험지는 초고속망을 타고 수험생에게 배달되고 시험 전에는 모두 암호키로 잠겨있어 유출의 우려가 없다. 철저한 보안시스템도 겹으로 둘러선 경비망보다 안전하다. 불과 10년 만의 일이지만 대입시군은 컴퓨터와 정보통신의 덕택을 톡톡히 본 셈이다. 생활의 많은 부분들이 변했고 시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앞으로 10년 후.
대입시군은 자신의 후배들이 어떤 형태로 시험을 치를지 자못 궁금하다. 인간의 상상력과 결부된 컴퓨터와 정보통신의 발달이 그들의 시험방식을 어떻게 바꿀 것이며 자신의 생활은 또 어떤 형태로 변하게 될까.
자신이 입시에 투자했던 1주일보다 더 적은 시간이 소요되고 보다 안전하고 정확한 능력평가가 이뤄질 것은 분명하다. 그 때는 2007년 자신이 치렀던 시험방식이 또 한편의 전설이 될 것이다.
<김윤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