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이 하나 둘 퇴근해버린 텅 빈 사무실. 야근을 빌미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박 대리의 표정이 진지하다. 박 대리는 잠시 머리도 식힐 겸 통신에 접속하기 위해 통신 에뮬레이터를 띄웠다.
『성인은 성인답게 놀아야지!』
박 대리는 짐짓 헛기침까지 해가며 PC통신 톱 메뉴를 서성인다. 주식 시세를 점검하러 갈까, 신문을 볼까, 마우스 포인터를 요리조리 교묘하게 움직이던 박 대리가 선택한 것은 성인답게(?) 놀 수 있는 「성인클럽」.
재빠르게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야릇한 미소를 짓는 박 대리의 마우스 포인터에 걸린 메뉴는 최첨단 온라인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는 이른바 「동영상 자료실」. 이곳은 관심 있는 게시물을 선택하기만 하면 살아있는 미인들이 요염한 몸짓으로 인사를 하는 곳이다.
박 대리가 굳이 사무실에서 PC통신의 멀티미디어 자료를 즐기는 이유가 있다. 바로 LAN을 이용하여 고속 통신을 즐길 수 있기 때문. 그뿐인가 창을 여러 개 열어 한쪽에서는 채팅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미인들의 나체쇼를 얼마든지 관람할 수 있으니… 게다가 집에서는 전화요금 부담이 있는데 회사에서는 공짜가 아닌가.
물론 들키면 예외 없이 시말서를 써야겠지만 치밀한 박 대리는 만약의 사태를 위해 또 다른 창을 열어놓고 오피스 문서를 클릭만 하면 통신 창이 뒤덮인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바다.
헉헉이는 숨소리를 고르며 여인들의 은밀한 몸짓을 즐기는 박 대리는 옆에 누가 다가오는지도 모르고 모니터 속의 금발 미인의 나신에 넋이 빠져있는데….
『자네! 똥누나? 왜 그렇게 헉헉거려?』
『허억~! 사…상무님!』
옆에 다가와 박 대리의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고지식하기로 소문난 대머리 상무님이었다. 화들짝 놀란 박 대리는 떨리는 손으로 오피스 창을 띄우려 했지만 웬일인지 마우스는 엉뚱한 곳을 클릭했고 오히려 통신 창만 대문짝만 하게 커져버렸다. 이제 여인의 모습은 컴퓨터 모니터의 사방을 채우며 요염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아울러 대머리 상무님의 눈빛이 매서워진 것은 물론이다. 모니터 속에서 금발 미인이 박 대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빨간 립스틱의 입술을 내밀며 윙크를 했다. 그녀는 은밀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Come on Baby… Come on…」
『박 대리! 야근을 이런 식으로 하나?』
『그…,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닌가? 자네 야근할 때마다 이 따위 농땡이나 피우라고 비싼 돈 들여서 랜 깔아주고 컴퓨터 설치한줄 아나?』
『죄… 죄송합니다! 잠시 머리 식히느라…』
『말이 필요 없네! 지금 당장 시말서 써서 내 방으로 가져오게!』
망했다…. 금발 미인의 허연 속살에 눈이 멀어 대머리 상무님이 옆에 온 것도 모르다니.
박 대리는 괜스레 모니터 속의 금발 미인을 흘겨보며 접속을 끊고는 시말서를 쓰기 위해 워드를 띄웠다.
제목 「시말서」
책상 위의 전화 벨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박 대리는 커다랗게 타이핑 된 「시말서」라는 세 글자를 서글프게 바라보며 수화기를 들었다.
『네! 개발팀 박창규입니다.』
『자네 시말서 쓰고 있는가?』
『앗! 네, 상무님! 지금 쓰고 있습니다.』
『엉터리로 써오면 알지? 어느 PC통신 어떤 메뉴였는지 GO 명령어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써와! 알겠나?』
수화기를 내려놓은 박 대리는 흐뭇한 표정으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말서를 썼다.
「GO ADULT」
그리고 시말서를 받아본 대머리 상무는 박 대리에게 이런 명언(?)을 남겼다.
『좋군! 이제 나가봐!』
그날 이후 박 대리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컴퓨터 모니터에 이런 표어를 붙여 놓았다. 「건전한 PC 통신으로 정보사회 이룩하자!」
<황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