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평] 장자크 라퐁,「Le Geant de Papier」

한국인들은 정서상 유럽음악, 그 중에서도 프랑스와 이탈리아 음악에 친근감을 느껴왔다. 이른바 유러댄스라는 영어음악도 이들 나라에서 많이 탄생하지만 정작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것은 본토어로 된 발라드 음악들이다.

소개될 기회가 적어서 그렇지 가끔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분위기 있는 샹송이 쓰일 때는 틀림없는 히트 가도를 달리게 되는 것이다. 영어보다 언어적인 친근감이 덜하다는 것을 빼면 유럽음악은 멜로디나 성정이 한국인의 입맛에 그대로 들어맞는 것같다.

그런 면에서 장 자크 라퐁도 한국인들이 두팔 벌려 환영할 뮤지션임에 틀림없다. 낯선 이름 때문에 신인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라퐁은 새내기가 아니다. 프랑스 툴루즈 출신의 이 발라드 가수는 이미 세상에 선을 보인 지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좀처럼 한국에 알려질 기미가 없다가 최근 앨범발매로 본격적인 신고식을 하게 된 것이다.

그의 앨범 「Le Geant de Papier(종이거인)」는 그의 본격적인 데뷔작이자 최대 히트작이다. 85년에 발표된 이 앨범으로 그는 프랑스의 쟁쟁한 음악상인 샹송 오스카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라퐁은 원래 음악과는 상관없는 의학도였다. 음악을 취미삼아 여기저기 파티석상에서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하던 아마추어였다. 프랑스 샹송은 이미 60년대부터 「프렌치 팝」이라는 이름하에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고 라퐁이 등장하던 80년대는 아예 언어만 프랑스어일 뿐인 영미음악의 또다른 변종이었다. 그러나 라퐁의 목소리에는 고정적인 샹송의 운취가 어려있었고 이는 곧 유명작곡가 제프 바르넬의 시선을 끌었다.

바르넬은 곧 라퐁과 손을 잡고 그를 중앙무대에 진출시켰는데 좋은 반응을 얻어낸 데뷔곡 다음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이 「Le Geant de Papier」다. 제목에서 짐작되듯이 이 노래의 모티브는 동화에 있다. 어떤 괴물도 용감하게 무찌를 수 있는 거인처럼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사랑하는 여성 앞에서는 마치 종이처럼 무력해지고(또는 부드러워지고)마는 남성의 사랑을 그린 것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정감을 물씬 풍기는 멜로디와 목소리, 상대방에 대한 한없는 배려가 음뻑 배어 있는 가사 등으로 해서 이 노래 발표 이후 라퐁은 바로 여성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낭만이 실종되어버린 시대에 꽃 한송이 들고 노래하는 서정시인 같은 그의 등장으로 인해 프랑스사회에서는 새삼스레 「낭만과 애정」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 『시대와 동떨어진 곡을 만든다』고 인정했지만 10여년이 넘은 지금도 고리타분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보편적인 정서구조에 호소한 때문일 것이다. 다가오는 겨울에 연인들을 위해 권장할 만한 앨범이다.

<박미아·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