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유선방송과 중계유선방송 사업자들 간의 갈등이 정면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중계유선방송과 한국전력 등 전송망사업자간, 종합유선방송과 프로그램 공급업체간, 전송망사업자와 종합유선방송 간에도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는 등 유선방송 산업의 전반적인 문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상호 경쟁관계에 놓여 있는 중계유선방송과 종합유선방송 간의 가입자 확보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은 지난 94년 정부주도로 케이블TV 산업이 출범할 당시부터 예고됐던 일이고 그동안에도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양사업자간에 전개되고 있는 갈등과 대립 양상은 종합유선방송 사업자가 중계유선방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중계유선방송 사업자가 일부 프로그램 공급사업자(PP)의 채널을 전송, 종합유선방송의 영역을 침범하는 등 사업자간 영역구분 논쟁으로 치달으면서 급기야는 상호고발 및 진정 등 법정시비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사업자간 사활을 건 이같은 갈등과 시비는 현재로서는 자체적으로 수습, 해결할 수 있는 한계를 이미 넘어 정부차원의 이해조정 등 외부의 조정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정면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다 우려하는 것은 양사업자간의 분쟁이 상호 고발사태로 확산됐다거나 일부 사업자들의 감정적인 대응태세보다는 이와 유사한 「영역파괴」 사례들이 유선방송 각 분야에서 줄을 잇고 있다는 사실이다. 프로그램 공급업체(PP)들이 종합유선방송 사업자가 아닌 공중파방송사에 프로그램을 제공, 논란이 되고 있는 것도 한 예로 들 수 있다.
케이블TV산업 출범 3년을 맞아 이같은 상황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이들 사업자들이 그동안 적자에 시달려와 채산성 확보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국면에 처한 데다 유선방송의 「틀」 자체가 이들의 욕구충족은 물론 산업 변화에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가 됐다는 것을 시사한다. 최근 상호 고발사태로까지 번진 종합-중계 유선방송 사업자간의 갈등은 기본적으로 「생존」을 위한 가입자 확보 경쟁에서 촉발된 것이고 다른 영역의 사업자들간의 분쟁 역시 근본적으로는 채산성 문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현행 케이블TV의 「틀」이나 「사업영역」 또는 「수단」에 변화나 융통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케이블TV 산업 원년에서부터 줄곧 지적돼 왔던 일이다. 몇개의 채널을 패키지화해 염가에 제공함으로써 가입자 확보를 꾀한다는 내용의 「채널 티어링」제도나 케이블TV 공공채널을 컨버터 없이도 볼 수 있게 해 저변을 확대하겠다는 일부 케이블TV업체의 「국민채널」서비스 허가 주장, 중계유선방송사업자들의 「주파수 확대」 주장을 비롯한 틀과 규정에 변화를 주자는 주장과 요구들이 업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최근 일련의 분쟁들이 「몇몇 사업자들의 무리한 과욕」으로 성토하고 넘어갈 수만은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정부차원의 유선방송산업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 모색이나 행정적인 조정 움직임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정부조직의 생리상 정권말기에 「일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는 바이고 정부조직 변화와 관련한 정치권의 각종 「말」들이 담당기관 관계자들의 의욕을 위축시킬 소지가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 케이블TV를 포함한 유선방송 산업은 어떤 정당이 정권을 잡고 정부조직이 어떻게 변하든지 간에 이에 구애받음이 없이 지속적으로 발전돼 나가야 한다. 또 사업자간의 갈등이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내놓기 어려운,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는 하나 정부당국의 역할을 필요로 하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정부가 이런저런 정황을 이유로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 역할을 포기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는 것이다. 특정부처나 제반 상황들보다는 「산업」을 염두에 둔 범정부적인 차원의 적극적인 역할과 조정능력을 발휘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