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업을 어떤 식으로 정리할 것인가. 최근 가전업계의 관심은 전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에 따른 사업축소 및 정리에 모아져 있다. 구조적인 한계에 부딪힌 사업들을 계속 끌어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출혈이 필요하고 지금과 같은 장기적인 불황국면에서는 기업생존 문제와 직결될 수밖에 없어 채산성이 없는 사업에 대해서는 과감한 정리가 필수적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전업체들이 그동안 점진적으로 추진해온 한계사업 정리작업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이 진행될 경우 이를 계기로 대상사업이 확대되는 것은 물론 그 속도 또한 가속될 것으로 예상돼 국내 가전산업의 근본적인 재편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가전업체들의 첫번째 정리대상사업은 라이프사이클이 빨라 대기업으로서는 대응하기 어렵고 시장개방으로 외산제품의 대량유입이 예상되는 소형가전사업분야다. 그동안 대리점들의 구색맞추기 차원에서 벌여온 소형가전사업을 정리한다는 원칙론 하에 지금까지 규모를 점차적으로 축소해왔지만 앞으로는 TV 등 5대 가전제품에 에어컨, 청소기 등을 포함한 7대 제품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는 일부 전략품목을 제외하고서는 사업자체를 중단한다는 것이다.
결국 가전3사들의 이같은 원칙론은 각사마다 수백개씩 확보하고 있는 대리점들에도 새로운 변화를 요구할 것으로 보여 국내 가전유통산업에 일대 변혁을 몰고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 3사가 무조건적으로 소형가전사업을 중단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밥솥과 청소기, LG전자는 가스오븐레인지와 식기세척기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어 앞으로 가전업체들의 사업방향이 철저히 실리위주로 전개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AV제품도 정리대상사업 가운데 하나다. 전세계적으로 수요가 격감하고 있는 VCR의 경우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은 VCR사업부 자체를 해외로 이전하거나 국내 생산라인을 대폭 축소하고 해외로 이전해 경쟁력을 갖춰 나간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오디오사업도 시장이 점차 축소되고 있는 비디오 CDP나 중국산 등에 밀려 경쟁력을 상실한 카오디오의 경우 가전3사가 대부분 생산을 중단하고 사업을 속속 포기하고 있다. 또 국내 오디오 생산라인 중 저부가가치의 CD카세트, 미니컴포넌트를 해외로 이전해 국내 공급물량을 이들 해외생산기지로부터 역수입해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가전3사는 이들 제품외에 집중 육성하고 있는 5대 가전제품 중에서도 부가가치가 낮은 소용량 제품은 해외생산 및 국내외 OEM으로 대체해 구색을 갖추고 국내에서는 고부가가치의 대형제품만을 특화해 채산성을 높여 나간다는 계획 아래 현재 해외이전 대상품목을 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가전업체들의 구조조정을 위한 한계사업 정리가 생존을 위한 자구책이지만 그동안 가전3사에 제품을 OEM공급해왔던 수많은 소형가전 생산업체들에는 반대로 시장상실을 의미해 중소형 가전업체들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돼 국내 가전업계의 전반적인 재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 가전업계 자체적으로도 연말 및 내년 초에 단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조직개편 및 임원인사와 구조적으로 맞물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여 앞으로 가전3사의 사업정리대상이 어느 선까지 확대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양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