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연도표기 혼선으로 지칭되는 「2000년 문제」를 놓고 시스템 공급업자인 한국IBM과 수요처인 은행권간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번 갈등의 발단은 국내 주요은행의 전산시스템 대부분을 장악한 한국IBM이 기존에 공급한 온라인 트랜잭션모니터(일종의 미들웨어)인 「CAP-I」가 2000년 문제에 대응할 수 없게 되자 이 문제를 해결한 신버전 「CAPA」를 출시하면서 가격을 종전보다 크게 올려받으면서 불거졌다.
한국IBM은 그동안 은행권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CAP-A」의 공급가격을 20% 정도 낮췄음에도 불구하고 그 반발이 날로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은행들은 비록 IBM이 가격을 다소 낮췄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CAP-A」의 가격수준이 너무 높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다각적인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당초 한국IBM은 「CAP-A」를 공급하는 대신 은행시스템의 규모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통 규모를 기준으로 분기마다 중앙처리장치(CPU) 1개당 2천만원 정도의 사용료를 납부하도록 은행측에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은행권의 반발이 거세지자 최근 한국IBM은 각 은행에 「CAP-A」의 사용료를 3년간 20% 정도 인하한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은행 전산관계자들은 이같은 IBM의 입장에 대해 근본적인 원칙을 무시한 일종의 생색내기라며 이같은 가격인하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가격면에서 기존 「CAP-I」의 공급가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IBM측이 제시한 가격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각 은행이 보통 3개의 CPU를 갖고 있다고 할 때 분기마다 납부해야 하는 가격은 약 3천3백만원에 이른다. 특히 이 사용료는 「CAP-A」를 사용하는 한 무한정 내야 하는 것으로 10년만 계산해도 14억원을 넘어서는 액수다.
이같은 금액은 기존의 「CAP-I」를 판매형태로 공급했던 것과는 공급방법상에서 큰 차이가 있으며 가격도 「CAP-I」가 CPU당 2억원 수준이었던 것과는 큰 격차를 보이는 것이다.
한국IBM측은 높은 가격수준에 대해 2000년 문제를 해결하는 이외에 여러가지 기능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은행측은 2000년 문제해결을 제외하고는 시급히 도입해야 할 필요가 없는 기능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은행관계자들은 특히 이같은 IBM의 정책이 근본적인 출발부터 잘못됐다고 말하고 있다. 즉 「CAP-A」를 사용해야 하는 근본원인이 2000년 문제해결에 있고, 이는 기존 시스템이 잘못된 결과로 발생했기 때문에 서비스차원에서 제공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 관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CAP-I」의 공급가보다 낮추기는커녕 오히려 엄청나게 높은 가격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한마디로 자기잇속만 차리려는 횡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IBM은 이에 대해 「CAP-A」의 공급가격이 본사에서 책정, 전세계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 은행들은 IBM이 이처럼 「CAP-A」 공급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음에 따라 다각적인 대책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은 「CAP-A」의 구매를 뒤로 미루고 있으며 특히 일부 은행들은 「CAP-A」를 사용하지 않고 2000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은행 관계자들은 또 이같은 IBM의 횡포가 국내 은행들의 전산시스템이 IBM기종 일색으로 돼 있는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이고 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전산시스템이 IBM에 종속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며 『IBM에 대한 강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은행들이 「CAP-A」를 구매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