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00년문제"는 비즈니스 대상 아니다

「컴퓨터의 연도표기 혼선」으로 지칭되고 있는 이른바 「2000년 문제」는 전산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는 기업이나 정부, 공공기관의 당면과제일 뿐 아니라 사회, 경제적으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지닌 범지구촌적 관심사로 등장한지 이미 오래다. 지금에 와서는 「2000년 문제」는 해결해야 할 기간이 불과 2년여밖에 남지 않은 화급을 다투는 사안이기도 하다.

일부 발빠른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내부적으로 「2000년 문제」 대책반을 구성하고 전산시스템의 분석과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정부차원에서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관련 부처와 전문기관을 동원해 「2000년 문제」 표준방안 마련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컴퓨터 사용자들의 이같은 자체적인 해결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컴퓨터 공급업체나 프로그램 제조업체의 보다 적극적인 해결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지난 수십년 동안 국내 산업계에 전산시스템 대부분을 보급해 온 외국 중대형 컴퓨터업체들이 최근들어 「2000년 문제」에 대응한 다양한 신제품을 발표하거나 업그레이드 실시를 밝히고 있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긍정적인 자세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일부 외국 중대형 컴퓨터업체들이 이에 대한 과다한 추가비용을 요구하거나, 「2000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산시스템을 새로 구축해야 한다며 막대한 투자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비난받아서 마땅한 일이라 여겨진다.

지난 수십년간 국내에서 전산시스템 사업을 전개해 온 일부 외국 중대형 컴퓨터업체들의 이같은 행태는 「2000년 문제」의 해결을 서비스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지나치게 비즈니스의 기회로만 여기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를 두고 자기 잇속만 차리려는 횡포라고 주장하는 관계자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외국 중대형 컴퓨터업체들의 「2000년 문제」 대응방식은 근본적인 출발에서부터 잘못됐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기업들이 「2000년 문제」에 대응한 중대형 컴퓨터나 전용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외국 중대형 컴퓨터업체들이 지난 수십년간 설치해 놓은 전산시스템의 「2000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따지고 보면 기존 시스템이 잘못된 결과인 셈이다. 때문에 이는 서비스차원에서 그냥 제공돼야 마땅하다.

외국 중대형 컴퓨터업체들은 이에 대해 「2000년 문제」에 대응한 시스템이나 전문소프트웨어의 공급가격이 본사 차원에서 책정돼 전세계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변명이 대부분의 시스템을 외국 중대형 컴퓨터업체로부터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조달해온 국내기업들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인 듯싶다.

최근 국내은행들과 한국IBM 간에 「2000년 문제」에 대응한 은행 전문소프트웨어의 공급가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갈등도 이같은 범주에 들어가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IBM이 그동안 은행의 거센 항의에 부딪혀 은행 전문소프트웨어의 공급가격을 낮췄음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국내 은행들은 비록 IBM이 소프트웨어 공급가를 조금 낮췄다고는 하나 전체적으로 아직 가격수준이 지나치게 높고, 공급방식도 기존의 단순 판매형태가 아니라 사용료 징수방식이라는 점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다각적인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 수십년간 외국 중대형 컴퓨터업체들이 전산시스템의 보급으로 국내 산업계에 끼친 유무형의 성과는 무시할 수 없다. 국내에 진출한 일부 외국기업들이 「2000년 문제」의 해결을 위해 몸살을 앓고 있는 국내기업들과 협력관계를 모색하고 있는 노력들에 대해서도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발등의 불로 떨어진 「2000년 문제」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여기고 있는 것은 시정돼야 마땅하다. 「2000년 문제」는 국내 전산시스템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외국 중대형 컴퓨터업체들에도 일정 부문 책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