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97 대기업 영상사업 결산 (1);프롤로그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영상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올 경영실적을 보며 내뱉는 한결같은 목소리다. 영상사업을 계속하자니 경상수지 적자는 눈덩이처럼 확대되고 사업을 포기하자니 영상산업 육성이라는 시장참여의 명분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에 있어 올 영상사업은 그만큼 고단한 한해였다.

영상산업에 참여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올 경상수지 적자는 적게 보면 1천억원, 많게 보면 약 2천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그러나 환차손을 제외하면 몰라도 예기치 못한 환율상승 등을 감안하면 올해의 경상수지 적자는 약 2천억원에 이를 것이란 게 업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대기업들이 앞다퉈 참여하고 있는 음반, 게임, 케이블TV 등의 사업이 예상 밖으로 본궤도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그나마 호조를 보였던 영화, 비디오사업도 경기침체로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그동안 짭짤한 재미를 보아온 영화, 극장사업은 올 경상수지 적자의 「주범」으로 떠올랐다. 올해 삼성영상사업단, (주)대우, 현대방송, SKC, 제일제당 등 대기업들이 지분투자 또는 직접 제작한 우리영화 제작편수는 대략 40여편. 최소 편당 10억원의 제작비만 계산해도 4백억원이 투여된 셈이다. 그러나 영화흥행에서 거둬들인 수입은 이의 절반도 안됐다. 외화배급 사업부진은 대기업의 최대 고민거리였다. 흥행실패뿐만 아니라 외화판권 구매로 인해 엄청난 환차손을 치르고 말았다. S사와 D사의 경우 로열티로 각각 약 40억∼50억원은 더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대기업이 자금확보책으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프로테이프사업도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크게 허덕였다. 중급 흥행작 없이 대흥행작 아니면 참패로 이어진 판매 양극화 현상은 경상수지를 크게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음반사업과 게임사업도 혼미를 거듭했다. 게임사업의 경우 대기업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외국업체의 판권확보에 급급했을 뿐이며 삼성영상사업단, (주)대우, 제일제당 등이 참여하고 있는 음반사업도 히트앨범 양산 등 일부 성과에도 불구, 여전히 경상수지를 맞추지 못했다.

케이블TV 사업은 그나마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시장확대에 따른 외형규모도 점차 커지는 양상을 보여줬다. 삼성의 캐치원의 경우 올해 사상 처음으로 1백%의 성장을 거두는 결실을 맺었으며 대우의 DCN도 올 매출목표인 2백억원의 목표달성이 유력시되고 있다.

대기업의 올 영상사업은 그들 표현대로 「사내에서 얼굴을 들 수 없는 지경」일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톡톡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유통망을 정비하고 소프트웨어의 일관공급체제를 갖춤으로써 비용을 상대적으로 줄여나간 한해였다. 특히 올 초부터 단행한 대기업의 일부사업에 대한 구조조정 노력은 높게 평가할만한 대목으로 꼽을 수 있다.

따라서 올 대기업의 영상사업 성적표를 단순히 경상수지 적자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는 게 산업계의 견해이다. 내실을 기하기보다는 아직도 투자를 더 늘려야 하는 시점에 서 있기 대문이다. 영상업계 관계자들이 대기업의 올 영상사업을 『외형은 실패했지만 내실은 다진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