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94)

『현미씨, 혜경씨한테는 아직도 연락 없나?』

『네, 아직 연락 없었습니다.』

『연락은 해보았나?』

『전화가 고장이어서 연락 못했습니다.』

『저 앞 공중전화에서는 사람들이 통화하고 있던데 앞에 나가서 전화해 보지.』

『그래요? 우리 은행 전화는 모두 불통인데요.』

『나가서 연락해봐. 거기는 전화가 되는가 봐.』

『네, 알겠습니다.』

현미는 자신의 자리까지 찾아와 혜경의 안부를 묻는 이 차장이 자리로 돌아가자 일어나 은행 밖으로 나섰다. 맨홀에서 일어난 화재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출근할 때 지나친 세종로 지하도에도 매캐한 냄새가 가시지 않고 있었고, 불꽃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광화문 네거리에는 사람 키 만한 케이블 드럼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혜경은 은행을 빠져나와 건너편 공중전화 부스로 다가갔다. 여러 개의 공중전화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고 혜경도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줄을 섰다.

광화문 네거리.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언제 불이 났었느냐는 듯, 평상시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현미는 어제의 그 불길을 떠올렸다.

그토록 무섭게 맨홀 속에서 치솟던 불길. 금방이라도 도시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 것처럼 거세게 타오르던 불길.

광화문 네거리 한복판 맨홀에서 발생한 화재는 어제 은행의 마감을 할 수 없게 했고, 오늘도 이미 개점 시간이 지났지만 전산망이 오프라인이 되어 업무를 보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 통신망을 총괄하는 통제실의 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형부와 위성관제소에 근무하는 언니가 어제 모두 집에 들어오지 못한 것이었다.

아무런 소식도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 부모를 기다리던 조카들이 늦게 퇴근한 현미를 보고 울음보를 터트렸고, 늦게서야 연락이 되어 화재로 인한 고장상태가 심각하고 하늘에 떠있는 위성까지 고장상태가 되어 집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현미는 차례가 되어 공중전화 부스 안으로 들어섰다.

메모된 전화번호를 눌렀지만 신호만 갈 뿐 응답이 없었다.

길게 길게 신호음이 이어졌지만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이내 줄이 늘어났다. 현미는 빠져나오는 카드를 빼들고, 다시 맨 뒤로 섰다.

어떻게 된 것일까? 어제 퇴근할 때 특별한 이야기없이 헤어졌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