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중계유선의 지역민방 동시재전송

장호순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케이블TV의 원조인 미국의 동시재송신(must-carry)문제 처리과정은 최근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 방송가 및 정부당국이 참조해야 할 부분이 많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난시청지역을 중심으로 중계유선망이 늘어나자 65년 동시재송신(must-carry) 규칙을 만들었다.

이 당시만 해도 중계유선국들은 지역민방 프로그램의 무료사용이라는 이점 때문에 동시재송신 규칙을 환영했다.

그러나 80년대 유선방송이 도시지역으로 확산되고 유선방송 프로그램 공급자들이 늘어나 채널 부족현상이 대두되면서 유선방송 중계국들은 역으로 동시재송신 의무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이들은 ABC 등 전국 네트워크 소속 지역민방과 달리 UHF송출의 중소 독립민방에까지 채널을 할당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유선방송 중계국들은 FCC에 동시재송신 규칙의 규제완화를 요청했고 FCC는 유선방송 중계국들이 독립민방을 배제할 경우 시청자의 TV수신권을 침해하고 독립민방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것을 이유로 동시재송신 의무를 강력히 밀고 나갔다.

결국 유선방송 중계국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반해 특정 프로그램을 재송신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85년 연방고등법원은 유선방송업자들이 할당할 수 있는 채널수 등을 고려하지 않고 FCC가 지나치게 획일적으로 의무재송신을 명령하는 것은 언론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대신 법원은 FCC가 동시재송신하는 지역민방의 범위나 채널 숫자를 축소한다면 합헌일 수도 있다고 암시했다.

이 판결 이듬해 1천3백56개의 지역민방 중 21%가 재송신을 거부당했고 특히 독립민방의 경우 재송신 거부 비율은 47%에 달했다.

이러한 가운데 92년 미의회는 유선방송법을 개정하면서 동시재송신을 아예 법제화했다. 대신 동시재송신 대상 지역민방의 범위를 축소했다. 12개 채널 이상을 제공하는 유선방송 중계국의 경우, 채널 용량의 3분의 1을 지역민방 동시재송신에 할당토록 했다.

TBS 등 유선방송업자들은 유선방송법의 동시재송신 규정에 대해 다시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지난 3월 연방대법원은 동시재송신 조항이 합헌이라고 최종판결을 내렸다.

연방대법원은 유선방송 중계사업이 독점사업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권리보호를 위해 동시재송신과 같은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정부의 개입이 없다면 상당수의 독립 지역민방이 경영상의 어려움에 직면하거나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FCC의 주장도 받아들여졌다.

동시재송신에 관한 미국의 사례는 방송시장의 탈규제를 표방했지만 시장경쟁이 시청자의 채널선택권을 축소하는 결과를 가져올 때는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함을 시사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지역민방이 잇따라 개국하면서 동시재송신 문제 때문에 지역민방과 유선방송 중계업자들과의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유선방송관리법 및 종합유선방송법 등 관련 법규정의 미비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지역의 숙원사업이었던 민방이 개국했어도 상당수 지역주민들은 시청을 할 수 없는 한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개입을 회피하고 있다.

방송정책의 탈규제는 정부의 역할을 줄이는 것이지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정부가 담당해야 할 역할은 사업자간의 공정한 경쟁을 통해 시청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이다. 따라서 주파수의 독점, 유선망의 독점 등으로 인해 시장경쟁 기능이 발휘되지 못하는 분야에는 정부가 적극 나서 시청자의 권리를 보호해 주어야 한다. 종합유선방송법과 유선방송관리법 시행령을 속히 개정해 지역민방도 동시재송신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