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IMF 태풍 (5);정보통신업계 파장과 전망

그간 국내 전산업을 통틀어 「가장 잘 나가는」 분야로 평가받는 정보통신산업도 이번 국제통화기금(IMF)태풍에서 비껴설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보통신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높게 평가되면서 업체간 과열양상을 보여온 터라 오히려 IMF가 몰고올 경기한파로 인해 느끼는 체감지수는 타 산업보다 한층 클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는 이미 조금씩 가시화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치열한 지분확보 경쟁과 사업권 획득전을 펼쳤던 유력업체들이 최근에는 증자규모를 대폭 줄이는가 하면 아예 출자한 지분을 매각하는 업체들도 등장해 아직 대규모 투자금 확보가 필요한 개인휴대통신(PCS)사업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또 30∼40%의 고성장을 구가해온 시스템통합(SI)업체들도 저성장을 기조로 하는 IMF체제에서는 더이상의 외형확대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내실 위주의 「버티기식」 비상경영체제로 사업계획을 긴급수정중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공공부문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 정보통신산업이 당장 정부예산의 축소와 공기업인 한국통신의 투자위축으로 극심한 시장침체의 늪에 빠져들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눈치다.

가뜩이나 수익률 저하로 긴축경영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한국통신은 IMF태풍까지 겹치면서 통신망에 대한 투자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경영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한국통신의 이같은 움직임은 통신업계 전반에 한랭전선을 드리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업계에서는 우선 정부와 IMF가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2.5%선에서 합의함에 따라 IMF측에서 정부예산의 축소를 요구할 경우 정보통신부문의 예산삭감이 현재 추진중인 주요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보통신업계는 그 중에서도 범국가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초고속 정보통신기반 구축사업이 가장 먼저 IMF태풍의 영향권에 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초고속 정보통신기반 구축사업은 21세기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정보화 기반을 닦는 일로서 우리 정부가 2015년으로 계획했던 목표연도를 최근 2010년으로 5년 앞당겼을 만큼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따라서 IMF태풍이 초고속 정보통신기반 구축사업의 지연을 초래하게 된다면 미래의 국가경쟁력 확보에 치명타를 가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초고속 정보통신기반 구축사업 가운데에서 정부예산이 투입되는 초고속 국가정보통신망 구축이 IMF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면 한국통신 등 민간 통신사업자들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초고속 공중정보통신망 구축사업도 IMF 영향권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국내 최대의 통신사업자인 한국통신은 내년도 네트워크부문 투자규모를 올해보다 30% 가량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럴 경우 「전화」로 통칭되는 기본통신시설분야 외에 당장 시급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신규 투자는 상당 부분 억제될 것이 분명하며 따라서 초고속 공중정보통신망을 포함해 통신망 고도화를 위한 각종 청사진도 당분간 서류함에서 잠을 자야 하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이같은 형편은 다른 기간통신사업자들도 마찬가지다. 통신사업자들은 예외 없이 내년도 경영계획을 재조정하고 있다. 최근 1∼2년 새에 새로 설립된 신규 기간통신사업자들은 원활한 시장진입을 위해서는 내년에도 대규모 투자를 지속해야 할 상황이지만 긴축기조 하의 경제상황에서 재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통신사업자들이 이처럼 통신망에 대한 투자를 줄여 「겨울나기」 채비에 돌입할 경우 통신장비 제조업체들은 당장 시장규모의 축소로 인한 불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제 막 발걸음을 내디딘 PCS3사와 내년 중 시내전화 서비스를 위한 기본 골격을 갖추어야 할 하나로통신이 통신장비 제조업체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지만 이들 업체가 계획한 만큼의 투자를 집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시되는 형편이다.

IMF태풍의 영향은 특히 대기업보다도 중소 정보통신장비 업체에는 기나긴 겨울을 강요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소 통신기기업체들은 시장상황이 갈수록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데다 신규사업으로 추진해 온 신기술 아이템에 대한 통신서비스업체들의 투자지연이 발생할 경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긴축재정으로 인한 시장침체 외에도 국내 통신업계는 IMF 자금지원으로 국내 통신시장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더욱 거세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초고속 정보통신기반 구축사업이나 차세대이동통신(IMT-2000) 기술개발사업같은 국가적인 프로젝트에 미국이 IMF를 앞세워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98년부터 단계적으로 이뤄질 통신시장 개방일정이 더욱 앞당겨지고 통신서비스업의 기업 인수합병(M&A)도 내년부터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결국 한 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불릴 만큼 호황을 구가하던 국내 통신산업도 산업 자체의 구조조정기에 진입한 데다 국가경제가 파산상태에 직면함으로써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지난 수년간 매년 35∼40% 이상의 고성장을 구가해온 SI업계도 전에 볼 수 없던 고강도의 비상경영체제 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98년 경기가 IMF의 구제금융 유입으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분위기가 위축돼 공공수요물량이 축소될 것으로 보이는 데다 민간수요도 기업들의 긴축, 감량경영으로 당초 계획보다 크게 줄어들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특히 계열사 영업비중(SM)이 큰 SI업체들은 그룹차원에서 불요불급한 정보기술투자를 축소할 것으로 보여 당장 내년 매출보전이 어렵다는 인식도 팽배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SDS, LG-EDS시스템, 현대정보기술, 쌍용정보통신, 대우정보시스템 등 국내 주요 SI업체들은 최근 당초 수립했던 올해 대비 30% 이상의 사업계획을 수정해 10∼15%의 안정기조의 저성장을 추구하는 대신 수익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사업구조를 조정해 나가는 한편 일부업체의 경우 97년 정도의 매출유지를 견지하는 비상경영체제를 마련중이다.

IMF가 구제금융을 담보로 국내 산업의 구조조정을 요구해올 경우 크게 영향을 받는 곳 가운데 하나는 네트워크분야다. 긴축경영이나 대량감원 형태로 나타날 구조조정이 일반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사업투자 위축을 불러오고 그 결과는 전산투자 축소나 더 나아가 백지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같은 전망은 현재 국내에 불어닥친 금융, 외환위기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올해 중반 들어 본격화힌 위기상황에서 대부분의 기업, 공공기관은 네트워크 구축계획을 전면 취소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실제 물량이 대폭 축소됨에 따라 네트워크업체들은 혈전을 불사하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 부산지역의 모 대학이 발주한 7억원 상당의 네트워크 구축 프로젝트에 무려 7백20여개의 업체가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네트워크업계의 어려운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대목이다.

현재 네트워크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중소 네트워크업체들의 대규모 도산사태. 물량감소로 인한 자금난을 중소 네트워크업체들이 이겨내기는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에 따라 내년 상반기 내에 몇십개의 중소업체들이 IMF 직격탄을 맞고 문을 닫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 LG정보통신, 쌍용정보통신 등의 업체들 역시 프로젝트 부족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30%까지의 환차손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을 타개할 만한 반짝 아이디어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한숨섞인 목소리다.

그나마 위안을 주는 것은 국산 네트워크장비의 선전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수요업체들이 반드시 필요한 곳이 아니면 값비싼 외국장비 대신 저렴한 국산장비를 선호할 것으로 보이는 데 따른 기대다.

유통정보시스템업계 역시 이번 IMF한파를 근심스런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특히 유통업체들은 유통되는 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투자위축현상이 어느 업계보다 클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자금경색은 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들의 매장 재구축작업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게 함으로써 당초 기대됐던 POS 및 정보시스템 교체작업마저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게다가 POS시스템의 경우 대부분 수입에 의존, 업체마다 30% 이상의 환차손까지 겹쳐 수주물량 감소에다 수익성 악화라는 이중고를 겪을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몰아닥칠 IMF태풍은 이렇듯 정보통신업계에도 예외없는 구조조정을 강요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향후 전개될 구조조정 자체가 아니라 그 지향성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번 구조조정이 그간의 「덩치 키우기」에 주력했던 업계의 마인드를 「내실 위주」로 바꿔 통신산업의 체질개선을 위한 진정한 시험대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 안팎에서 힘을 얻어가는 시점이다.

<김경묵·최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