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龍淵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금년 말로 정확히 만 10년을 마무리하는 국산 주전산기 개발사업을 뒤돌아 볼 때, 당시 우리의 중대형컴퓨터 설계기술이 국내 최고라는 그저 야심과 자신으로만 가득했던 지난 날이 새삼스럽게만 기억된다. 그러나 우리의 자신은 설계 초기단계에서 무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하드웨어를 설계하기 위해 종이 위에 시스템 아키텍쳐를 그리고 블록 다이어그램을 그려나가면서 우리 모두는 이렇게 복잡한 회로를 머리 속으로 가상 시뮬레이션하여 과연 개발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으며, 그것은 의구심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불가능이라는 말이 맞다고 판단되었다.
이러한 고뇌의 과정 속에서 눈을 돌린 것이 컴퓨터지원설계(CAD)시스템의 적용이다.
국산 주전산기 하드웨어 개발에 CAD시스템을 적용하기 위한 3단계의 추진전략을 수립하한 것이다.
1단계는 CAD 시스템을 이용한 완벽한 블록 레벨설계 및 시뮬레이션 기술 정립, 2단계는 완벽한 보드 레벨 설계 및 시뮬레이션 기술 정립, 3단계는 시스템 레벨 시뮬레이션 및 통합시험 기술 정립이었다. 각 단계는 3년 주기로 설정하고 개발 환경 설치 및 적용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여건은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나갔다.
제일 먼저 대두된 문제가 연구원 개개인의 생각을 CAD 환경 속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새로운 CAD 환경에 적응하기보다는 종래의 수작업에 의한 설계 방식을 선호하였다. 따라서 결국 주전산기 개발사업 초창기에는 CAD시스템의 적용과 종래의 수작업에 의한 설계 방식을 병용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저 지난 10년 전의 어려웠던 우리의 개발환경을 단순히 기억해 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국산 주전산기 Ⅱ,Ⅲ,Ⅳ 개발과정을 통하여 단계적으로 이루어낸 지금의 우리 현실을 설명하고 향후 발전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국내 대형 컴퓨터 시스템 개발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주전산기 Ⅱ,Ⅲ 개발사업을 통하여 완벽한 보드 레벨 설계 및 시뮬레이션 기술을 정립하였고, 주전산기 Ⅳ 개발사업을 통하여서는 시스템 레벨 설계 및 시뮬레이션 기술을 정립함으로써, 명실공히 국내 최고의 중대형 컴퓨터 하드웨어 개발을 위한 CAD 개발 기술 및 환경을 구축하였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앞으로 예상되는 슈퍼컴퓨터 수준의 초대형 컴퓨터 개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마지막으로 10년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늘의 환경을 정립하면서 2가지 사항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CAD시스템을 이용한 하드웨어 개발 환경 구축시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 브랜드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프로젝트 특성에 가장 적합하도록 도구들을 통합 운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 기술이다. 즉, 여러 회사의 도구들을 각자의 특수한 프로젝트 환경에 가장 적합하게 인터페이스 될 수 있도록 구축하여 마치 자체 도구(InHouse Tool)인 것처럼 고유의 CAD시스템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둘째, 매년 수천억원의 국가 예산이 소요되는 CAD 시스템 구입을 전적으로 외국기업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몇몇 중소기업들이 개발을 시도하고는 있으나 국산 CAD시스템 개발은 거의 전무한 것이 현실이고, 그 성능 및 투자 면에서도 외국 대기업에 경쟁 대상이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조속히 국가 차원의 장기적인 투자로 국산 CAD시스템을 개발하여 국내 수요를 충당함으로써 국가 경제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CAD맨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이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