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재일한국인에 대해 차별은 70년대까지만 해도 가혹했다. 당시 국내 신문 등에서는 연일 일본의 한국인 차별에 대한 기사를 많은 부분에 걸쳐 할애할 정도였으며 급기야는 국제적인 인권문제로까지 비화되기도 했다.
지금도 일본의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으로 채용되는 등 예전에 비해 많이 호전되고 있다.
70년대 당시 일본의 귀화정책에 재일한국인의 2세와 3세 등이 일본인으로 귀화했으나 의식있는 많은 한국인들은 그대로 남았다. 한국인으로 남은 그들은 일본의 차별정책에 맞서 싸우거나 일본을 떠나 한국 등 다른 나라로 떠나기도 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교포들 중에는 상당수가 전문직종에 종사하고 있고 일부는 대학교수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으며 자기분야에서 학문적 높은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한양대 전자공학과 박용진 교수다.
『재일교포 출신으로 정보산업관련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사람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계산학과 전길남 교수와 포항공대 전자계산학과의 방승양 교수 등 몇명이 있다』면서 박 교수는 재일교포 2세로서 처음에 한국에 적응하는 데 무척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한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지역도 어두웠을 뿐 아니라 문화적인 차이도 느꼈으나 주변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쉽게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며 당시의 상황을 토로한다.
박 교수는 국내 데이터통신 1세대다. 지난 78년 일본 와세대에서 데이터통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듬해부터 한양대에서 줄곧 교수생활을 해온 박 교수는 국내 많은 학회와 단체 활동을 주도적으로 해오고 있다.
87년부터 4년 동안 한국정보과학회 정보통신연구회 위원장을 비롯, 92년에는 대한전자공학회 전자계산연구회 위원장을 거쳐 94년 개방형 컴퓨터통신 연구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정보과학회 부회장과 IEEE 서울위원회 부회장, APAN한국협의회 준비위원장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박 교수는 『78년 한양대에 부임했을 때 당시 첨단분야 관련 학자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면서 『이제는 훌륭한 젊은 인재들이 많아 연구성과물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며 우리의 첨단분야 연구개발능력을 자랑한다.
그의 「네트웍컴퓨팅연구실」에는 석사 12명과 박사 6명 등 18명의 젊은 인재들이 박 교수와 함께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박 교수는 앞으로 고속정보통신망분야와 모빌컴퓨팅분야 등에 연구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며 특히 인재양성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 국가발전에 기여한 학자로 남고 싶어한다.
평안한 복장을 즐겨입고 다닌 박 교수는 학생들 사이에서 코미디언 김병조씨의 헤어스타일을 닮았다고 해서 「양배추」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양봉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