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특강] 정보클리닉

郭龍求

85년 서울대 공과대 조선공학과 졸업

85∼87년 대한항공시스템부 근무

87년 고려대 철학과 수학

88∼92년 LG EDS IPC, 청호컴퓨터 근무

92∼95년 딜로이트 매니지먼트 컨설턴트

95년∼현재 (주)CAS 대표이사, 한국정보시스템감사통제협회 출판이사, 한국정보통신기술사협회 이사, 정보관리기술사, 정보시스템감사사(CISA)

엘 고어 미국 부통령은 차기 대통령을 「정보 대통령」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GII(Grobal Information Infrastructure) 등을 주창한 자신의 이미지와 결부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국가의 최고 경영자, 최고 의사결정자이고자 하는 그가 정보와 정보 인프라의 가치를 「감」이나 옛날 중국 천자들이 중대사 결정에 앞서 의지했던 「점(占)」에 비교하지 않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만큼 「감」이나 「점」은 이제 올바른 의사결정 수단이 아니다. 지금의 의사결정 방법은 충분한 정보의 축적과 그 정보가 유도하는 합리적 결론 그리고 그에 근거한 최고 의사결정자의 결단일 뿐이다.

우리는 이미 정보사회에 돌입했다고 할 수 있다. 가랑비에 옷 젓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어느새 정보에 흠씬 젖어 있다. 지금 장마 비처럼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추스를 처마조차도 발견할 수 없는 지경에 노출되어 있다. 어떤 것은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밀려오고 있고(Push) 또 어떤 것은 스스로 목말라 하며 당기기도(Pull) 한다.

과연 우리가 구가하고 있는 정보사회는 건강한가. 지금 체온은 얼마인가. 고혈압, 당뇨 같은 성인병 증상은 없는 것인가.

인간의 심리상태나 인간이 만들어 내는 사회적 현상도 어디까지가 정상적이고 어디부터가 비정상적인 것인지 확실한 선을 긋기는 힘들다. 마찬가지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우리 정보사회의 발전과 그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두고 정상과 비정상을 꼭 찍어 구별해 내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상대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직은 후퇴를 모르는 전진이, 양적인 팽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언제 어느 사회에서건 존재하는 그런 필요악일 뿐이다.

정보사회의 병리증상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정보사회의 병리증상은 크게 조직내 증상과 조직외 증상으로 대별할 수 있다. 조직외 증상은 사회적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직내 증상과 조직외 증상은 확실히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은 상호간섭 작용에 의해 증상이 증폭되거나 또는 양자간에 전염되는 경우도 있다. 대체적으로 조직내 증상이 어떤 수단을 강제해서라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회적 증상은 법적, 제도적 강제력이 동원되더라도 통제되기 어려운 것일 경우가 많다.

사회적 증상은 말 그대로 특정한 조직을 벗어나 사회 전체에 영향이 미치는 것으로 영향력이 막대하다. 사회적 증상의 대표적인 예는 허구와 현실 사이의 구분을 어렵게 만드는 「데모 신드롬」이다.

멀티미디어의 발달은 과거에는 구호로만 그쳤던 비전(Vision)을 가시화(Visualization)했다. 마치 당근과도 같이 가시화한 비전을 좇아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트릭 속에서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

사회적 증상의 또 다른 예는 무가치한 정보의 무차별적 전파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종의 「강박」 현상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많은 정보가 신문, 잡지, 정보지 또는 방송 등을 통해 지속적, 반복적으로 전달돼 사람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마치 원하지도 않는 생각이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떠올라 환자를 괴롭히는 강박관념과도 유사하다. 심각한 경우로는 개인정보가 조직 밖으로 「출혈」돼 충격적으로 오용되는 현상을 볼 수도 있다. 심각성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매스컴을 통해 대서특필되지만 얼마나 치료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것은 대고객 서비스를 중시하는 조직에서 정보가 유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조직내 증상과 연계해 다루어져야 할 주요 증상이다.

사람들에게 치명적이지 않지만 결국 해악일 수밖에 없는 정보의 만연현상도 사회적 증상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런 사회적 증상은 민간차원의 대증요법으로 큰 효과를 보기 힘들다. 이미 앞이 무한정 열려 있는 정보사회에서 근원적인 병인(病因)이 확인돼 있다해도 그것을 치유한다는 것은 무의미하거나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이유로 사회적 증상을 쉽사리 통제할 수 없는 증상으로 분류한다.

조직내 증상을 살펴보자. 조직내 증상은 대상영역을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것을 「정보병리 스펙트럼」이라는 그림으로 표현해 볼 수 있다. 스펙트럼의 가장 우측단에 정보를 활용해 업무의 능률화를 꾀하거나 또는 사업에 직, 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하는 소위 조직 구성원의 정보마인드 영역이 있다고 설정해 보자. 이 경우 반대측인 가장 좌측단에는 정보가 수집, 가공, 축적, 유통되게 하는 데 필요한 매우 다양한 정보기술 및 통신기술로 구성된 기반기술 영역이 있다. 이 경우 양자의 중간에는 순수하게 조직이 요구하는 정보에 해당하는 영역이 존재한다. 물론 이들 삼자간의 명확한 경계구분이 힘들 수 있다. 스펙트럼은 이런 성격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수단이 된다.

「정보마인드 영역」에서는 어떤 증상들이 있을까. 우선 정보가치에 대한 「불감증」을 들 수 있다. 현재는 많이 나아진 상황이지만 아직도 정보에 의한 조직의 목표달성이라는 「오르가슴」을 느껴보지 못한 조직은 우리 주위에 허다하다. 조직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그러하다면 향후 조직의 존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조직원도 이럴 경우 그 조직은 능동적, 창조적이지 못하고 행동반경을 넓히거나 변화에 적응하는 데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다. 이럴때 치료를 위해서는 고도의 테크닉을 가졌거나 궁합이 맞는 파트너를 만나야 할 것이다.

정보마인드 영역에서 볼 수 있는 또하나의 증상은 정보의 가치를 알면서 정보를 다루는 테크닉이 부족한 「정보 소화불량」 증상이다. 의욕적으로 다년간 정보를 쌓아놓고도 그것을 소화하는 방법을 모르는 조직에서 볼 수 있는 증상이다. 이런 조직에는 앞의 증상보다도 쉬운 방법으로서 컨설턴트가 주는 좋은 소화제(숨겨진 정보의 진가를 발견할 수 있게 하는 힌트나 자극) 한알만으로도 활력을 줄 수 있다.

「정보기반기술 영역」에서 나타나는 증상들을 찾아보자. 가장 흔한 것이 「외제 선호」 증상이다. 이것은 병 아닌 병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핵심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를 외국에서 들여와 쓸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하이테크분야에서 나타나는 선진국과의 격차 때문이다. 문제는 유형의 제품이 아닌 컨설팅과 같은 무형의 서비스에서도 그 품질을 따지기 전에 외제 브랜드를 선호하는 증상이다. 이 증상의 치료에는 관련된 국내 브랜드(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컨설팅, 정보시스템 감사 등)와 정부의 각성과 노력이 필수적이다.

또 하나의 증상은 「소심증」이라 할 수 있다. 제품선정이나 기술 아키텍처의 결정, 정보시스템의 구축, 그리고 그에 기초한 조직문화의 변화에 소신을 갖지 못하고 남의 눈치, 추세를 무조건 좇는 것이다. 담당자의 향후 책임문제와 변화하는 기술의 이해라는 짐이 빚어내는 증상이기도 하다. 조직이 이류나 삼류를 벗어나기 위해선 누군가는 과감히 털고 일어나야 할 증상이다.

때로는 「과대망상」이나 「피해망상」도 있다. 정보기술, 정보시스템의 구축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라는 등식이 과대망상을 유발시킨다. 반면 남이 하는데 나만 안해서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은 피해망상의 일종이다. 포괄적으로 정보기술이나 관련된 지식의 「결핍증」이 아직도 우리를 힘겹게 하고 있는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도처에서 조직의 정보화를 계획하고 추진하고 있지만 세련된 전문가는 턱없이 부족하다.

일반적으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위해서는 5∼7년이라는 최소기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 쓰는 기술이 도입된 것은 대부분 그보다 훨씬 짧은 것도 한 이유다. 전문가는 중요한 영양소다. 이 영양소 결핍현상은 전문집단의 자체적인 노력으로 전문가가 양성됨으로써 점차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당장의 프로젝트 수주에 급급해 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부조리의 악순환 궤도를 벗어나기 위해선 정부차원의 제도적 개선과 정보시스템 감리와 같은 제3자적 보완수단의 동원이라는 처방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스펙트럼의 중간에 있는 「정보 영역」을 살표보면 이 영역에서는 순수하게 양질의 정보, 충분한 정보를 확보하고 유통, 이용하는 과정에서의 증상이 있을 수 있다.

우선 필요한 양질의 영양소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불순한 비영양소가 다량으로 섞여 조직의 원활한 신진대사(의사결정 등)에 지장을 초래한다. 이 경우 조직은 비영양소를 걸러내고 순영양소만을 추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심한 경우 그저 땀만 흘리고 말 뿐 별무소득일 수도 있다. 정보에 대한 통제가 부족하고 그 인식 자체가 희박한 우리의 현실에서 흔히 발견되는 증상이다. 자신이 만들고 운영하는 정보시스템에서 나온 정보를 남도 아닌 자신이 불신하는 사례는 우리 사회 어디에서든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증상에는 이른바 정보 위생학적 처치가 근본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정보 품질개선 노력은 정보시스템 구축 초기부터 주도 면밀히 준비돼야 마땅하다. 정보시스템 감사도 하나의 중요한 처방이 될 수 있다.

둘째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각종 바이러스의 감염에 의한 정보나 정보시스템의 손상현상이다. 셋째는 자상(刺傷)이다. 외부로부터의 침입자가 휘두른 칼에 정보와 정보시스템이 깊은 상처를 입거나 일부를 절제해가는 이른바 해킹이나 도청은 너무나 잘 알려진 것이다. 이런 사태에 대비해서 여러 가지 보안장비나 정보시스템 감사와 같은 수단을 통해 사전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일단 상처를 입었을 경우 조직 자체가 치명적인 상태에 다다르지 않게 응급처치를 준비하고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상처를 치유, 복구시키는 예행연습을 해두는 것도 또한 상당히 중요하다.

이 이외에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증상은 수없이 많다. 그것은 사회, 조직 또는 조직내의 정보시스템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신진대사를 하고 비전이나 공통의 목표를 추구해 가면서 변화, 발전, 성장하는 과정이 이상적으로 진행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정보 병리현상은 단순히 정보 또는 정보기술 분야의 관심사가 아니다. 미래학자의 거창한 장미빛 비전이 명(明)이라면 그것은 그보다도 더 절실하게 우리에게 다가올 정보사회의 암(暗)이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