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디지털시대로 접어들면서 가장 큰 변화는 특정상품의 시장이 형성되기에 앞서 국제적인 표준규격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디지털시대의 국제표준은 아날로그시대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구속력도 강해 국제 표준규격 제정 그룹에서 소외된 업체는 특정 사업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기술과 정보를 규격제정 그룹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즉 핵심기술과 이에 대한 특허권리를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디지털시대의 생존조건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가전, 멀티미디어 등을 중심으로 특허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법무팀 소속 라이선싱 2그룹은 연구소와 더불어 선진업체의 특허공세를 제1선에서 저지하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라이선싱 그룹의 업무는 크게 세가지다. 외국업체들이 특정기술의 특허료를 요구할 때 과연 이들의 특허권 행사가 타당한지를 분석하는 작업이다. 그다음 특허료를 요구하는 업체들이 삼성전자의 특허기술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지 파악하는 것이다. 즉 상대방의 특허료 요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거나 부당한 특허료 요구가 없도록 대응특허를 찾아내는 일이다.
또 특허료 지불이 불가피할 경우 최소한의 특허료가 지불되도록 협상하고 삼성전자가 개발한 기술을 특허권리화하는 것도 이 팀의 중요한 임무다.
13년째 특허업무를 담당해온 허재호 과장은 80년대 말까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특허공세로 불리한 조건에서 협상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한다.
허 과장은 『미국의 RCA가 지난 30년대 개발한 TV기술로 전세계 TV생산업체들에 특허료를 징수하고 있으며 80년대 초반 VCR생산에 뛰어든 국내업체들이 세트원가의 3∼5%를 일본업체들에 특허료로 내고 있다』는 사실을 예로 들면서 기술과 특허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국내업체들의 기술력이 향상되고 특허에 대한 경영층의 마인드가 달라지면서 선진업체들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상황은 벗어났다고 말한다.
MPEG2를 담당하고 있는 최성규 과장은 『최근에 확정된 삼성전자의 MPEG LA 가입에 대해 그동안 특허료를 일방적으로 징수당하기만 했던 국내 전자업체가 특허료를 받는 입장이 됐다는 사실만으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특허업무를 대행하는 전문회사의 등장이 상징하듯 디지털시대에는 특허를 확보한 업체들의 특허료 공세가 더욱 강력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택성 과장은 『국내업체가 선진업체와 시장 쟁탈전을 벌여야 할 디지털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특허료 부담』이라고 지적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진국의 특허공세에 부딪힌 이들의 바람은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열악한 연구개발(R&D)과 특허화에 대한 투자가 확대돼 대응할 무기가(특허)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다.
<유형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