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방송] 「방송과 통신의 융합」 물 건너갔나

90년대 초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대형 화두를 내던졌던 미국의 방송 및 통신업계 흐름이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제시했던 학계 및 업계의 초기 수렴이론에 의한다면 미국내 전화, 케이블, TV는 지금쯤 완전히 융합됐어야 하지만 진행방향은 정반대의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당초 학자 및 업계 스스로도 거대 자본력을 가진 기업들이 음성과 영상, 데이터를 하나로 묶은 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원스톱공급자로 발전, 영상 및 통신업계가 서로 치열한 경쟁을 거듭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그러나 최근의 동향은 전화사업자들이 영상전송사업에 뛰어들겠다는 계획을 포기하는 대신 장거리전화시장에 진출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며 케이블TV 역시 주춤한 모습이다.

예를 들어 지역전화사업자들은 새로운 종류의 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해 케이블TV업계와 전략적 제휴를 맺는 대신 자신들끼리 합병하고 있다.

지난해 퍼시픽 텔레시스(PacTel)와 합병했던 전화사업자 SBC도 합병 즉시 팩텔의 야심찬 무선케이블TV사업 계획을 취소하고 워싱턴지역의 케이블회사 2개도 매각했다.

벨애틀랜틱, 나이넥스, 팩텔이 컨소시엄 형태로 설립한 텔레TV도 원래 계획했던 대로 최고의 양방향TV 네트워크가 되는 대신 장비관련 정보센터로 위축됐다.

MSO(복수 케이블TV사업자)인 타임워너가 올랜도에서 양방향TV 시험을 위해 실시한 풀서비스 네트워크는 현재 거의 취소된 상태다.

이처럼 원래 예상했던 거대 복합텔레커뮤니케이션기업 출현이나 케이블회사가 전화서비스를 하고 전화회사가 영상을 전송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시장은 영상전송사업자와 전화사업자가 분리된 원래 모습 그대로다.

최근 방송학자들은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원대한 비전이 차질을 빚게 된 배경에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우선 작은 규모의 시험이 성공적으로 수행됐지만 수많은 대중에게 영상을 무리없이 전송할 수 있을 만큼 기술은 발전하지 못했다. 필요한 기술이 미처 뒤따르지 못한 것이다.

둘째, 관련 법규정이 변했으며 마지막으로 갑작스럽게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홈뱅킹, 교육, 오락 등 양방향TV의 영역을 잠식해갔다.

그렇다고해서 미국 전화회사들이 영상전송 등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 전혀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학자들은 전화사업자들이 지금은 케이블TV업계와의 경쟁보다 더 중요한 다른 부문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벨애틀랜틱 관계자는 『기술은 결국 발달할 것이고 이 상황이 되면 전화사업자들은 텔레커뮤니케이션, 정보서비스, 오락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원스톱공급자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 전화사업자들은 일단 프로그램을 생산, 분배하는 것보다는 전송매체를 제고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을 뿐 영상분야를 아예 버린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전화사업자들은 영상전송에 계속적인 투자를 유지하고 있다.

벨캐나다의 모회사인 BCE는 캐나다내 직접위성방송(DTH) 운영자인 ExpressVu의 90%를 소유하고 있고 애틀랜타의 벨사우스는 무선케이블TV를 사들이고 있다.

기술이 마침내 전화사업과 케이블TV를 경쟁할 수 있게 할 만큼 발전하고 양업계간 시장분할에 대한 위협이 등장할 때 전화회사는 콘텐츠 배급업자를 다시 꿈꾸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들리고 있다.

<조시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