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기로에선 국내 반도체산업 (중)

국내 반도체 산업이 D램의 맹주였던 일본업체를 따돌리고 95년 이후 세계 시장의 리더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공격적인 선행투자 덕분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반도체 산업이 가장 잘 나가던 95년 삼성전자, 현대전자, LG반도체 등 반도체 3사가 투자한 반도체 시설은 전세계 시설 투자의 20%를 넘었다.

95년 한해의 투자가 96.97년 2년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쥐락펴락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는 의미다. 아마도 95년 선행투자의 약효가 98년까지는 상당부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반도체 업계의 투자 의욕은 급격히 꺾이고 있다. 올해 국내 반도체 3사의 시설 투자는 전세계 반도체 시설 투자의 7%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반면 최근 메모리 분야에 범국가적인 투자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대만의 시설 투자는 전세계 투자의 15%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메모리분야를 석권하고 있는 미국은 전세계 반도체 생산장비의 32%를 사들였다.

이같은 흐름은 내년이후에도 크게 바뀔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국내 반도체 업계의 투자가 줄어들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 체제하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국제 신용도 추락으로 예년처럼 외자의 대규모 차입이 불가능한 것도 국내 반도체 업계를 우울하게 만드는 요인중의 하나다.

때문에 국내 반도체 3사의 내년도 국내 시설 투자는 대부분 축소된다.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50%까지 줄어들 것이 분명해 보인다.

삼성전자는 내년 2.4분기부터 기흥 공장 9라인에 8천억원 이상을 투자키로 했던 당초 설비 투자 계획의 정상적인 집행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스코틀랜드 공장에 8천억원, 이천공장에 3백 밀리(12인치)연구동 파일러트 라인(R3)에 3천억원을 쏟아붓기로 했던 현대전자의 반도체 시설투자도 축소가 불가피하다.

내년 하반기에 영국 웨일즈 현지 공장에 9천억원, 4.4분기에는 청주 C3에 1조원을 투자해 신규 생산라인을 구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던 LG반도체도 최근 계수조정작업을 벌이고 있다. 또 3백 밀리 시대를 대비해 청주에 3천5백억원을 들여 연구용인 기가라인을 설치하려던 계획도 재검토를 피할 수 없는 형편이다.

제4의 한국 메모리업체를 추진하고 있는 동부그룹의 프로젝트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현재 상황이라면 국내 반도체 업계의 내년도 총 시설투자규모는 당초 예상했던 6조원의 절반 수준에도 못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선행투자가 곧바로 차세대 제품 시장에서 지배력의 차이로 직결되는 반도체 산업만의 독특한 속성을 감안할 경우, 반도체 산업이 사상 최악의 위기라는 표현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특히 98년은 차세대 메모리 제품인 2백56MD램 및 1GD램 생산시설 구축, 3백mm 웨이퍼 설비 도입등 반도체 산업의 생존을 위한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측면에서 국내 반도체 업계의 주름살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최승철 기자>